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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6. 09 제 13호

월간추사 

2026.  09  제 13호

항백 박덕준  월간추사www.hangb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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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어록
布白有三
한 글자의 짜임새는 결구법이 아니라
필획 간의 포백(기세와 공간 배치)에 따라 결정된다.
판단의 기록
〈대팽고회〉는 추사가 71세에 쓴 예서 대련이다.
이 작품의 필획은 납작하고 네모나며 무뚝뚝하다. 
얼핏 보면 둔하고 단조롭다.
추사는 왜 이런 필획을 썼을까.
초서원리
항백초서원리 <특집> - 추사의 花 초서
중앙박물관 전시중인 추사 서법 속 초서 花의 실체를 밝힌다.
이 花는 일반적인 행초서자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형이다. 
그러나 여러 작품에서 반복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아 
추사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花의 초서임을 알 수 있다.
이달의 작품
외부의 기세 : 〈달항아리〉
도자기에서도 실현된 관계론 서법
서보(書譜)읽기
書譜 — 서법으로 읽는다. 세필로 다시 쓴 서보 43~46번 문장
손과정이 말한 서법의 깊은 뜻을 기세 중심의 관점에서 번역하고 해석하였다.
영문초록(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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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白有三

포백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해설〉

字中之布白, 한 글자 안에서의 포백,

逐字之布白, 상하 글자 사이의 포백,

行間之布白, 좌우 행 사이의 포백이다.

이 세 가지 포백은 기존의 결구법뿐만 아니라 장법까지 포괄한다.

따라서 개별 글자의 형태와 자간·행간의 구성을 통괄하는 하나의 구조라 할 수 있다.

字中之布白은 결구법을 버려야 한다는 말에 대한 대안이다.

한 글자의 짜임새는 결구법이 아니라 필획의 포백(기세와 공간 배치)에 따라 결정된다.

대안일 뿐만 아니라 추사서법의 중심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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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기록

 

판단의 기록(7)

추사는 왜 이렇게 무뚝뚝한 필획을 썼을까

대팽고회 (김정희 각 129.5 × 31.9, 1856. 종이에 먹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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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이더라”

(大烹豆腐 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이는 시골 늙은이 에게는 제일 가는 즐거움이요 최고의 낙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한 황금인을 차고 음식이 눈 앞에 사방 한 길이나 차려지고 시녀가 수백명이라 할지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수 있는이 몇이나 되겠는가? 행농(杏農)을 위해 쓴다. 칠십일과

〈대팽고회〉는 추사가 71세에 쓴 예서 대련이다.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내용으로 한 두 폭의 글씨다. 지난해 한 전시에 출품된 이 작품을 두고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추사의 대표작으로 보기에는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이 필획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실제로 이 작품의 필획은 낯설다. 납작하고 네모나며 무뚝뚝하다. 형태의 변화도 적고 장식적인 요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둔하고 단조롭다.

그렇다면 추사는 왜 이런 필획을 썼을까.

필자는 이것이 우연히 만들어진 필획이 아니라 추사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서에서 시작된 필법

 

청대 신서법 사조에서는 서법의 근원을 한나라 예서에서 찾고, 그것이 북비를 거쳐 당나라 해서로 이어지는 계통을 중요하게 보았다.

 

<예서 → 북비 → 당 해서>

 

필법도 이 계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대 신서법에서는 예서의 필법을 정통 필법의 근본으로 삼았다. 이는 이전 시대의 필법 개념과 다른 중요한 변화이다.

필자는 이 계통에서 나타나는 필법을 90도 필법과 45도 필법이라는 개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해왔다. 예서의 90도 필법과 이를 계승한 45도 필법은 둥글고 순하게 진행되는 기존의 순방향 필법과 성격이 다르다. 예서의 90도 필법으로 그은 필획은 납작하고 네모나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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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方板(방판)이라는 비판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추사는 〈서원교필결후〉에서 원교 이광사의 서론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乃反以歐顔爲方板一律”

이에 도리어 구양순과 안진경의 필획을 方板 일색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方板’은 지금까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해석되지 않은 표현이다. 필자는 이를 ‘네모난 판자 같은 필획’이라는 비하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원교는 예서에서 비롯된 납작하고 네모난 필획의 외형만을 보고 方板이라 낮추어 말하였다. 추사는 〈서원교필결후〉에서 바로 이러한 원교의 필법 인식을 비판하였다.

 

 

- 方板에서 方勁古拙(방경고졸)로

 

그러나 원교가 方板이라 비하한 이러한 필획에 대한 추사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추사에게 납작하고 네모난 필획은 피해야 할 결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서의 본체에 해당하는 필획이었다.

청대 신서법 시대에는 이전과 다른 서법적 경향이 부각된다. 필획에서는 둥글고 온화한 기존의 필획과 달리 네모나고 강한 필획이 중요하게 등장하고, 서법의 미감에서도 단아하고 정제된 풍모와는 다른 옛스럽고 졸박한 맛을 중시하게 된다.

 

추사는 이러한 새로운 서법의 지향을 方勁古拙이라는 말로 집약하였다.

 

隷書是書法祖家, 若欲留心書道, 不可不知隷矣.

隷法必以方勁古拙爲上.

예서는 서법의 근원이다. 만약 서가의 길에 마음을 두고 싶다면 예서를 알지 못하고는 할 수 없다.예서의 법은 반드시 方勁과 古拙을 최고로 여긴다.

 

여기서 方勁은 필획의 성격을 말한다. 둥글고 부드러운 필획이 아니라 예서의 필법에서 만들어지는 네모나고 굳센 필획이다. 古拙은 서법에서 드러나는 미감으로, 단아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과 달리 옛스럽고 졸박한 맛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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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이 작품의 무뚝뚝한 필획도 분명해진다. 추사는 일반적인 예서에 나타나는 장식적인 요소를 가능한 한 걷어내고, 90도 필법으로 만들어지는 方勁의 골격만을 남겼다. 그 결과가 납작하고 네모나며 무뚝뚝한 필획이고, 장식을 걷어낸 그 질박한 맛은 古拙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필획을 쓰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90도 방향으로 붓을 긋는 특별한 필법에 정통해야 가능한 필획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순방향 필법과는 붓을 운용하는 자세와 동작, 지면과의 마찰을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다. 장식을 걷어낼수록 오히려 필법 자체의 공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 어떤 서예가 높은 품격을 가지는가

 

이제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납작하고 네모난 필획, 장식을 걷어낸 무뚝뚝한 형태만을 놓고 보면 단조롭고 세련되지 못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추사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렵다거나 격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인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품격은 필획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필획들이 만들어내는 기세의 관계와 그 울림을 통해 어떠한 서경을 이루는가에 있다.

추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品格之高下 不在形似

품격의 높고 낮음은 형태의 닮음에 있지 않다.

 

추사가 서예의 품격을 어디에서 찾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의 의미도 달라진다. 方板이라 비하한 바로 그 필획으로 方勁古拙을 실험한 것이다.

 

이 작품은 추사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71세에 쓴 글씨다. 인생에서 잊고 살았던 일상의 즐거움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일까. 글씨에서도 거추장스러운 장식과 기교를 모두 걷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말년의 모습 속에서도 평생 견지해온 서법에 대한 실험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무뚝뚝한 필획만으로도 기세의 관계와 운은 충분히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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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문제라고 여긴 바로 그 필획이 오히려 추사가 무엇을 시도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아직 하나의 문제가 더 남아 있다.

자세히 보면 서로 연결되어야 할 필획들이 곳곳에서 떨어져 있다.

추사는 왜 필획의 연결부분을 떨어뜨렸을까.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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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에 원리가 있다

항백 초서원리 < 특집 > - 추사의 花 초서

 

 

1. 도입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전시 작품 가운데 한 대련에 눈길을 끄는 초서 한 글자가 있다. ‘花’로 해석되는 글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花의 자형과는 상당히 달라, 그 형태만 보아서는 쉽게 花라고 알아보기 어렵다.

행서대련 彩筆名花 ( 추사 김정희 각 128.5 × 32, 1856)

서 법 속 문자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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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는 채색 붓에 산호 붓걸이, 제일가는 꽃에 비취꽃병”

(無雙彩筆珊瑚架, 第一名花翡翠甁)

들녘 사원과 산풍경이 미우인의 청효도처럼 기이하여,

왕성한 정신과 샘 솟는 기운이 운필의 팔에 전달되는 듯 해. 요선에게 써 주다. 71세

이 글자는 필자에게 낯선 글자가 아니다. 십여 년 전 초서의 변화 원리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이미 이 花의 자형을 문제 삼아 그 자형이 만들어진 원리를 추적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모임 《문헌과해석》에서 발표하고 논문으로 게재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추사가 쓴 花를 다시 만나면서 오래전에 다루었던 문제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당시의 결론과 지금의 결론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당시에는 낯선 花의 초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면, 지금 관심을 끄는 것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초서원리의 변주와 응용이다.

 

추사의 花는 초서원리 형성 이후의 변주와 응용이라는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 글에서는 손과정의 《서보》에서 시작하여 당 이후 여러 서가들이 쓴 花의 초서를 비교하고, 기존의 초서원리가 어떻게 이해되고 응용되면서 서로 다른 자형으로 나타나는지를 추적한다. 이를 바탕으로 추사는 왜 이처럼 낯선 형태의 글자를 쓰게 되었는지, 또 왜 이 글자가 花의 초서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花 초서의 형성

 

지금까지 초서원리는 문자가 실제로 변화해 온 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살펴보았다. 진말에서 후한 말까지의 기간 동안 정리된 문자 생략 원리이다.

 

그런데 花는 사정이 다르다. 한나라까지는 花라는 글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華 한 글자가 ‘꽃’이라는 뜻과 ‘화려하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花와 華로 나누어 사용하는 두 의미가 아직 별개의 문자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설문해자》에도 花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華자만 보인다. 따라서 花에는 진나라 문자인 소전 자형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두 의미가 서로 분화되면서 ‘꽃’은 “花”, ‘화려하다’는 뜻은 “華”로 구별하여 쓰게 되었다. 《강희자전》은 “花字,自南北朝以上不見於書,晉以下書中間用花字”라 하여 花자가 남북조 이전의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고 진(晉) 이후의 글에서 간혹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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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花의 초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다른 문자들은 진말에서 한말에 이르는 실제 자료를 통해 초서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기에 花라는 글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花가 초서로 변화해 가는 역사적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후대에 등장한 花의 초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花가 하나의 문자로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초서의 기본적인 원리가 형성된 이후였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花를 초서로 쓰기 위해서는 이미 형성되어 통용되던 초서원리를 花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3. 손과정의 초서 花 이해
花의 초서는 항백초서원리를 적용하여 그 자형을 구성해 볼 수 있다. 먼저 초두(艹)의 변화를 살펴보자. 초서에서 초두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위의 두 점을 먼저 쓰고 아래의 가로획을 쓰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의 가로획을 먼저 쓰고 위의 두 점을 쓰는 경우이다. 필획을 쓰는 순서의 차이가 초서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호를 만들어낸다. 여기서는 그 변화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그 결과만 적용하기로 한다.
다음은 亻변의 변화이다. 亻은 초서에서 하나의 세로획으로 생략된다. 彳과 氵도 같은 원리에 따라 하나의 세로획으로 생략되며, 초서에서는 이 세 가지 형태를 하나의 기호인 세로획으로 대표하여 사용한다.
이상의 생략방식을 花에 적용하면 두 가지 초서 자형을 구성할 수 있다. 초두의 두 가지 기호에 亻의 생략형을 적용하여 재현한 것이 그림 좌측의 붉은 글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초서원리에 따라 재현한 것과 유사한 花의 자형이 실제 묵적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바로 당(唐)의 서법가 손과정(孫過庭)이 쓴 《서보(書譜)》의 花이다.



(艸와 亻의 생략의 원리를 
적용하여 구성한 초기 초서 : 필자)                      손과정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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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정(孫過庭, 虔禮, 648~703?)은 당대 초서에 정통한 서법가일 뿐만 아니라, 방대한 체계를 갖춘 서법이론서인 《서보》를 초서로 써서 남긴 서법이론가이다. 그의 초서는 왕희지(王羲之)를 계승하여 후대 서가들에게 초서 학습의 전범이 되었으며, 앞선 시대에 형성된 초서의 형태와 원리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말 이후의 초서는 손과정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손과정의 초서에는 앞선 시대에 형성된 초서원리가 이어지고, 이후의 서가들은 이를 전범으로 삼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응용하였다.
청대 서가들이 대체로 초서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추사(秋史) 역시 초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손과정의 초서만큼은 예외로 보아 본받아야 할 전범으로 강조하였다.
따라서 손과정의 《서보》에 나타나는 花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대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花라는 새로운 문자에, 앞선 시대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초서원리가 적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당 이후 花 초서의 사용 형태
손과정 이후 당·송에서 원·명, 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명가들이 쓴 花의 초서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여러 형태의 자형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를 손과정의 花와 비교해 보면 실제 변화가 일어난 곳은 의외로 한 곳뿐이다. 바로 초두(艹) 부분이다. 그 아래의 化 부분은 손과정의 초서 형태를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 당 이후 역대 명가들이 쓴 花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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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의 초두 부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하지만, 문자원리로 살펴보면 두 가지 형태(a·b)로 정리할 수 있다. 당 이후 역대 서가들은 이 두 형태를 함께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두 기호를 왜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사용할 수 있었을까.



                花초서 두가지
                좌(a)      우(b)
그 직접적인 근거는 花보다 앞선 시기의 초서에서 찾을 수 있다. 왕희지와 손과정이 쓴 發의 초서가 그 사례이다. 發의 상부는 초서에서 초두기호로 통용된다.  두 사람이 쓴 發의 상부를 비교하면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초두기호가 나타나는데, 이는 역대 명가들이 花의 상부에서 사용한 두 가지 형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왕희지~손과정 기간 현상 a              發초서 b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시기이다. 왕희지는 동진, 손과정은 당대의 서가이다. 따라서 發에서 서로 다른 두 형태의 기호를 같은 것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미 이른 시기의 초서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당 이후의 서가들은 선대의 초서를 학습하면서 이 두 형태가 같은 기호로 통용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發에서는 왜 서로 다른 두 형태의 기호를 같은 것으로 사용했을까.
5. 發초서에서 두 형태가 통용되는 원리
초서가 전승되는 과정에서는 본래 특정 부수에서 만들어진 기호라는 인식이 약화되면서, 하나의 단순한 획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나타난다. 敬의 초서에서 이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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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초두의 초서형(두가지)은 본래 초두기호(敬1)라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단순한 세로획으로 사용한 사례(敬2)가 나타난다. 敬의 초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세로획으로 인식되면 필사방식에 따라 두 가지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가로획 다음에 세로획을 쓸 때 좌측에서 기필할 수도 있고, 우측에서 기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방식은 붓의 이동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획을 쓰는 서로 다른 필사방식이다.
가로획 다음에 세로획을 쓰는 필사방식에 따라 다시 두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가로획 다음 좌측에서 기필하여 세로로 긋는 방식(1방법)과 우측에서 기필하여 세로획으로 긋는 방식(2방법)이 동일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필적에서도 이 두 가지 필사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초서의 생략원리에서도 확인된다. 貝의 경우 좌측을 생략한 형태와 우측을 생략한 형태가 모두 같은 貝의 초서로 사용된다. 口와 田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생략방식이 나타난다.



따라서 發에서 나타나는 두 형태는 우연히 만들어진 변형이라기보다, 기호의 전승과 두 가지 필사방식, 그리고 초서의 생략원리 속에서 충분히 가능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6. 추사의 花 초서
〈彩筆名花〉에서 쓴 花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손과정 이후 역대 명가들이 사용해 온 花 초서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제 추사가 쓴 花로 시선을 옮겨보자. 추사의 작품에서 花의 초서를 찾아보면 서로 다른 두 가지 형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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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彩筆名花>에서 쓴 「花」              (가)                   (나)                        (다)
(가) : <不二禪蘭圖>에서 花   (나) : <題石坡蘭卷> 탁본에서 花   (다) : <梅花圓光> 탁본에서 花

하나는 역대 명가들이 사용해 온 花 초서의 계보를 따르는 형태이다. 〈不二禪蘭圖〉의 花(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르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작품인 〈彩筆名花〉의 花를 비롯하여 〈題石坡蘭卷〉 탁본첩의 花(나), 〈梅花圓光〉 탁본의 花(다)에서 보이는 형태이다. 이 자형은 앞에서 살펴본 역대 명가들의 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다.
추사는 한편으로는 역대 명가들이 사용해 온 花 초서를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계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花의 초서자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추사는 왜 이렇게 썼을까.
새로운 花를 기존 자형과 비교해 보면 차이는 하단부, 즉 匕 부분에 있다. 기존의 방식은 가로획을 그은 다음 우측으로 올라가 마지막 획을 긋는 방식이다. 반면 추사의 새로운 花는 가로획을 그은 뒤 좌측으로 돌아가 위에서 다시 기필하여 마지막 획을 긋는다.
두 방식은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匕를 쓰는 서로 다른 필사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花의 상부와 發에서 확인한 방식과 같다. 즉 추사는 새로운 초서원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왕희지와 손과정의 發에서 이미 확인되고, 후대 花에서도 통용되어 온 기존의 초서원리를 花의 하부 匕에 새롭게 적용한 것이다. 새로운 것은 원리가 아니라 그 원리를 적용한 위치였다. 그 결과 역대 명가들의 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초서자형이 만들어졌다.
- 추사의 마지막 판단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살펴볼 것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원리에 따르면 좌측 꺾쇠·세로획·우측 꺾쇠는 같은 원리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형태이다. 기존 花의 匕가 좌측 꺾쇠 형태이므로, 이를 다른 방식으로 바꾼다면 추사에게는 세로획과 우측 꺾쇠라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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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이 가운데 우측 꺾쇠를 선택하였다. 〈彩筆名花〉뿐만 아니라 〈題石坡蘭卷〉과 〈梅花圓光〉에서도 같은 형태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초서원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 가능한데 추사가 우측 꺾쇠를 선택한 것은, 기존의 花초서와 다른 자형을 만들기 위한 문자조형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추사의 새로운 花에는 두 단계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기존의 초서원리를 이전과 다른 위치에 적용한 것. 둘째, 그 원리가 허용하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7. 초서원리의 변주와 응용
추사의 花는 일반적인 행초서자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형이다. 그러나 〈彩筆名花〉뿐만 아니라 〈題石坡蘭卷〉, 〈梅花圓光〉 등 여러 작품에서 같은 형태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아 추사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花의 초서임을 알 수 있다.
이 자형을 만드는 데 특별하거나 새로운 초서원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추사는 이미 역대 초서에서 충분히 통용되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전에 적용하지 않았던 부분에 새롭게 적용하였다. 그리고 그 원리가 허용하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자형을 만들었다. 
십여 년 전 이 花를 처음 다루었을 때와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다시 살펴보니 그 과정은 오히려 단순하다. 새로운 것은 반드시 새로운 원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원리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새로운 형태는 만들어질 수 있다.
추사의 花는 초서원리가 고정된 자형을 만드는 공식이 아니라, 이해와 적용, 그리고 판단에 따라 변주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번 花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서 초서원리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초서는 후대로 갈수록 기존 원리의 응용과 변주가 거듭되고, 때로는 잘못 이해된 형태가 다시 응용되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초서는 진에서 시작하여 한말에 완성되었다. 여기서 ‘완성’이란 초서의 변화가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초서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변화원리가 이 시기까지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항백초서원리는 한나라 말까지의 문자 변화에서 확인되는 원리를 기준으로 삼고, 이후의 변화는 이미 형성된 원리의 전승과 응용,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花도 마찬가지다. 손과정의 花까지는 한나라 말까지 형성된 기존의 초서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원리로서는 여기까지이다. 그 이후 역대 명가들의 花와 추사의 새로운 花는 새로운 원리의 형성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원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변주하여 새롭게 적용했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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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제 13호이달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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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기세 : 〈달항아리〉
53 × 43.5  2026  hangbak  한지에 먹
 
도자기를 통해 발견한 관계론 서법
이 작업은 관계론 서법을 도자기의 형태로 실현한 항아리 작업 시리즈이다.
서예에서 문자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작업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글자의 의미가 아닌 필선의 기세를 드러내기 위해 문자를 빼고,
문자를 대신하여 반복되는 필선으로 도자기의 형태를 만들었다.
도자기의 내부뿐 아니라 외부도 하나의 기세가 된다.
외부는 비어 있는 공간이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부의 기세와 대응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관계를 만든다.
이 항아리 연작은 추사의 내기·외기 개념을 조형으로 확장하고,
관계론 서법이 문자뿐 아니라 다른 조형적 소재에서도 실현될 수 있음을
확인한 작업이다.
〈달항아리〉는
내부와 외부의 기세가 처음으로 대응한 작품이다.
외부의 기세를 만들어 갈수록 내부의 기세도 함께 변화하였다.
외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부와 조응하는 또 하나의 기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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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古今阻絶 無所質問 設有所會 緘秘已深 
 
옛날과 지금이 멀리 떨어져 묻고 배울 곳이 없으며, 설령 깨달은 바가 있어도 굳게 감추어 비밀로 하는 일이 이미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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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遂令學者 茫然莫知領要 徒見成功之        美 不悟所致之由 
 
이에 배우는 사람들은 망연하여 그 요체를 알지 못하게 되고, 한갓 이루어진 결과의 아름다움만 볼 뿐, 그렇게 된 까닭을 깨닫지 못한다.
                                                                                                        領要 : 要點, 從은 徒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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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或乃就分布於累年 向規矩而猶遠         圖眞不悟 習草將迷 
 
어떤 이는 수년 동안 글자의 구성 원리를 익혔으나, 법도에서는 오히려 멀어졌다. 그러니 진서를 배워도 깨우치지 못하고, 초서를 익혀도 더욱 미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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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假令薄解草書 粗傳隸法             則好溺偏固 自閡通規  
 
가령 초서를 조금 이해하고 예서의 법을 대강 전해 받았다 하더라도, 편벽되고 고루한 데 빠져 스스로 보편적인 법도에 통하는 길을 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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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 월간추사 제 12호 : 영문초록(Abstract)

Summary
This issue explores Chusa’s calligraphy by looking beyond outward form to the principles and artistic judgments that generate it.
In Chusa’s Remarks on Calligraphy, the phrase 布白有三 (There are three kinds of bubai) provides a way to understand the structure of calligraphy from the composition of a single character to the spacing between characters and columns. A character is shaped not by a predetermined compositional formula, but by the bubai of its strokes—the arrangement of their dynamic forces (gise) and the spaces between them.
Record of Judgment examines a work by Chusa distinguished by its flat, angular, and seemingly blunt strokes. Such strokes, disparaged by Wongyo Yi Gwang-sa as 方板 (fangban, “square boards”), were understood very differently by Chusa through the principle of 方勁古拙 (fangjing guzhuo) in clerical script. The discussion shows that the quality of calligraphy lies not simply in the beauty of individual stroke forms, but in the relationships among their dynamic forces and the resonance (un) created through those relationships.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traces the transformation and application of cursive principles through Chusa’s unusual form of 花. Chusa did not invent a new principle. Rather, he applied an established principle of cursive script to a position where it had not previously been used and selected one form from among the possibilities that the principle allowed. What was new was not the principle itself, but the way it was applied.
Although these three essays address different subjects, they converge on a common idea: the visible form of calligraphy is a result. To understand calligraphy, we must look beyond that form to the principles that generate it and to the calligrapher’s judgment in applying those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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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6. 09|  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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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발행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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