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5.10 제 2호
월간추사 2025.10_제 2호 항백 박덕준 월간추사

“今捨北碑 無以言書法” (이제 북비를 제외하고는 서법을 말할 수 없다.)
- 북비는 남북조시기 북방의 비석에 새겨진 비문의 서법을 말한다. 북비 비문이 서법이 중심에 있음을 천명하였다.
- 추사어록 중에서

월간추사 2025. 10 | 제 2호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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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에 원리가 있다.
- 至(지)에 담긴 초서 코드 (두번째)
통일 진 시기의 문자 변화는 두 가지 직접적인 요인으로 가능했다. 하나는 상형을 해체하고 기호로 전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필법의 등장이다. 특히 진간에 나타난 이 새로운 필법은 필법 변천사에서 두 번째 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시기에는 필법이 문자 형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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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에 담겨진 초서 코드 1 영문초록(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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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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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書譜)읽기
- 세필로 다시 쓴 서보 3, 4, 5번 문장

至(지)에 담긴 초서 코드 (두번째)
-고문 단절은 초서의 출발
초서의 시작을 특정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숙제를 해결한 것이다. 진예(秦隷), 곧 진의 문자에서 초서 시작의 구체적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상형문자가 기호화되는 일대 전환이었다. 허신(許愼)은 이를 “고문이 단절되었다”라고 표현했다. 돌아보면 그의 지적은 새로운 문자의 시대를 예고한 통찰이었다. 다만 그 시대가 이 후 이천 년 동안 이어지리라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문 단절은 문자에 육서(六書) 원리를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며, 『설문해자』는 그 문제의식과 관련이 깊다고 본다.
육서(六書)는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가지로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이를 문자 해설의 중심 논리로 삼았다. 『설문해자』에서 기준으로 한 문자는 진예가 아니라 소전(小篆)이었다. 왜냐하면 한대의 현실은 이미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대에 성행한 진예 계열의 문자들은 소전과 달라져 육서 원리의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허신은 이러한 상황을 고문 원리의 훼손으로 보고, 본래 문자로 회귀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고문 단절’은 곧 초서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至 자로 돌아가 보자.
한말에 완성된 현대문자(예서·초서·행서·해서)는 소전이 아니라 진간(秦簡)에서 출발한다. 진간에서는 상부의 두 점이 가로선으로, 몸통은 口 기호로, 아랫부분은 土 기호로 변하여 오늘의 至 문자 체계를 이루었다.
이 사실은 소전이 고대 문자를 정리하는 종결점이었다면, 진간은 기호화된 현대 문자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결국 소전과 진간의 차이는 상형을 유지하느냐 무시하느냐의 문제이며, 이는 곧 고대문자와 현대문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고문(古文)
1) 넓은 의미로 고대문자로 소전을 포함하여 그 이전 전국시대의 문자 - 금문(대전, 주문)등이 해당 된다. 한편 초서, 예서, 해서, 행서 4서채는 소전이후 문자 변화 이후의 문자로 이를 고대문자에 대응하여 현대문자라고 할수 있다.
2) 한서 6체에 하나의 문자로 고문(古文)이 있다. 주석에 그 문자를 풀이하여 공자벽속서 나온 문자(孔子壁中書)라 하였다. 전국시대 문자의 일종으로 보인다. 한나라 당시 진예 계통의 문자로 쓴 경서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금문(今文)경서라 한다. 한서 육체의 고문(古文)은 금문(今文)의 대응하는 의미다.
여기서 고문의 단절이란 1)의 의미로 본다.
< 至의 5서체>
소전(小篆) : 전서는 대전과 소전으로 구분한다. 전국시대 이전 금문을 대전(大篆), 진나라 전서를 소전(小篆)이라 한다. 소전 만으로 전서를 지칭하기도 한다.
초서(草書) : 초기에는 생략하여 초솔하게 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나라 말에 이르러 초서가 하나의 독립된 서체로 정립된다. 일반적으로 전.예.해.행.초라고 하여 초서를 가장 마지막에 놓는데 이는 발생순서가 아니다. 오히려 소전이후 가장빠른 시기 문자다.

예서(隸書) : 예서는 진나라 예서(진예)가 있고 한나라 예서(한예)가 있다. 진예는 소전과 동시대 문자로 현대문자의 출발이된 문자이며, 한예는 초서와 함께 현대문자로 완성이된 서체를 말한다. 5서쳬의 예서는 후자다.
행서(行書) : 경쾌한 걸음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쓴 서체로 일상의 필사에 흔히 사용된 서체.
해서(楷書) : 楷(해)는 법, '표준'이라는 뜻. 위진시기를 지나 당(唐)대에 완성 당시의 표준문자.
<초서등 현대문자 至의 시작은 소전이 아니라 진간이다>
<현대문자>
현대문자(초서, 예서, 행서, 해서)는 소전이 아니라 진간으로부터 직접 이어진다. 소전과 진간의 차이는 상형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상형을 무시하느냐 이다.
- 새로운 필법의 등장
통일 진시기에 나타난 상형 무시 현상의 배경을 살펴보자. 큰 원인은 문자 사용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신속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이유는 진간에서 처음 나타난 새로운 필법이다. 진간은 육필(肉筆) 자료로 남아 있어 소전과 필법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예컨대 手 자를 보면, 소전은 붓을 진행 방향과 나란히 두고 긋는 ‘순방향 긋기’로 곡선의 곡선과 치밀한 연결에 적합하다. 반면 진간은 붓을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두는 ‘90도 긋기’를 사용하여 속도가 빠르고 강한 기필과 두터운 획을 낸다. 그러나 연결은 성글다. 이처럼 진간에서 시작된 새로운 필법은 필법 변천사에서 처음 나타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 세 가지 필법의 변천
이렇게 해서 문자를 쓰는 필법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변천하였다. 그 시작은 붓을 진행 방향과 나란히 두고 긋는 ‘순방향 필법’이다. 이 방법은 소전을 포함하여 그 이전까지 사용된 전통적인 필법으로, 획의 굵기 변화가 없이 일정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곡선의 흐름을 살리고 획과 획의 연결을 치밀하게 만들지만, 속도 면에서는 느리다는 한계가 있었다.

두 번째는 붓을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두는 ‘90도방향 긋기 필법’이다. 진간에 이르러 등장한 이 방법은 굵기의 변화가 풍부하여 강하고 두터운 획을 구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단순하고 신속한 필획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만큼 연결은 성글고 거칠어졌다. 이 필법은 진말 문자의 형태를 크게 바꾸었고, 한말에는 파책의 장식이 붙은 예서체로 발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붓을 진행 방향과 45도 각도로 두는 ‘45도 방향 긋기 필법’이다. 이 방법은 두터운 획과 가늘고 예리한 획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 필선의 대비가 뚜렷해졌다. 남북조 시대에 나타나 당대에 이르러 해서로 완성되었으며, 해서의 각종 획 마무리에서 보이는 다양한 처리 방식은 바로 이 45도 필법의 결과였다.
- 새로운 필법과 문자형태 변화
莫(막)·節(절)에서 형태가 변화하였다. 필법의 변화는 문자 형태에 직접 작용하였다. 莫과 節의 변화를 보면 소전에서 곡선으로 쓰이던 획이 진말·전한을 거치며 점차 직선으로 바뀌었고, 한말 예서에서는 완전한 직선 구조가 되었다. 이는 순방향 긋기에서 90도 긋기로 바뀐 것이 곡선이 직선으로 변화된 주요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금문(金文) :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 시기에 사용된 문자로 제사용 기물 등에 주조된 형태의 문자.
초간(楚簡) : 초나라 지역 출토 문자로 금문이 북방이라면 초간은 남방의 문자다.
<초두와 대죽은 초두 기호로 수렴 사례>
이 시기 초두와 대죽 부수의 변화가 특이하다. 莫 자의 초두(艸) 부수와 節 자의 대죽(竹) 부수는 예서와 초서 단계에서 결국 같은 형태로 수렴하였다. 본래 초두는 풀을, 대죽은 대나무 잎을 본뜬 것이어서 소전 단계에서는 뚜렷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예서와 초서에서는 두 부수가 모두 초두(艹)로 통일되어 쓰였다. 이러한 현상은 節 이외에도 筆(붓 필)의 대죽 부수, 草(풀 초), 符(부신 부) 등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그 까닭은 소전 이후 진간에서 시작된 90도 긋기 필법의 정착에 있었으며, 이로써 오랫동안 남아 있던 “왜 서로 다른 두 부수는 동일한 초두 기호로 굳어졌는가”라는 의문이 풀리게 된다.
- 추사 필법과 세가지 방식
필법의 변천을 세 가지 방식으로 정리하게 된 것은 문자 변천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필자에게 상상 이상의 성과를 안겨주었다. 문자 형태와 붓 사용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필자의 서법은 몇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내용은 이미 《묵서집 歸》에 자세히 수록된 바 있다. 한지에 농묵을 운용하는 방법, 예서 필획을 두텁고 강하게 구사하는 방법, 해서의 예리한 필법, 세필의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운용 등이 모두 이와 직결된다.
이 과정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필법의 역사>
1) 秦(진) - 순 방향 긋기 원필 -- 소전
2) 漢(한) - 90도방향 긋기의 방필 -- 예서
3) 唐(당) - 45도방향 긋기의 절충 -- 해서

진예(秦隷) : 진나라 예서, 진서 8체에 속함.
진간(塵簡) : 출토된 진나라 문자. 쓰여진 형태가 목간 죽간 등 간독형태라 하여 진간이라 함. 리야진간, 수호지진간 등이 있음.
육필(肉筆) : 붓으로 직접 쓴 필적
농묵(濃墨) : 진한 먹물
파책(波策) : 흔히 파임이라고도 하며 책(策)확이라고도 한다. 예서에서 마무리 부분에 물결모양의 장식이나 해행서의 우측 사선에서 마무리 하는 장식등을 말한다.
진간의 필법현상 : 곡선이 직선으로, 연결부분은 성글고 신속한 처리에 의한 형상.
예초(隷草) : 진나라 문자로 진예를 지칭하는 다른 말. 예서이면서 초서라는 의미.
무엇보다도 이 세 가지 필법을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추사의 필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추사는 이 방법들을 문자 개념에 따라 분명히 구분하여 구사했으며, 그의 글 《서원교필결후》에도 그 단서가 드러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을 자세히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흔히 ‘중봉’이라는 이름의 필법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 필법 가운데 순방향 긋기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서체를 막론하고 붓 호를 필획의 가운데에 두고 그어야 한다는 주장은 소전 필법에나 적합한 것이다. 이 방법만으로는 이후 서체의 다양한 변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 진간에서 필법현상
진간은 세 가지 필법 중 두 번째, 곧 90도 긋기 필법을 처음 보여준다. 소전에는 없던 이 필법으로 인해 문자의 모습에 독특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를 ‘진간의 필법현상’이라 부를 수 있다.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고, 연결 부분이 성글어지며, 신속한 처리로 획이 점이나 짧은 선으로 축약되는 현상이다.
소전과 진간은 같은 시기 문자이지만 진간은 소전과 다른 필법을 사용하였다. a,b,c는 진간의 필법현상이다. 곡선이 직선으로, 연결부분 성글게, 그리고 빠르게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d는 이러한 필법현상에 의하여 문자가 변한 상태이다. 필법현상에서 좌우 두 개 선은 두점으로 변하였고, 두 점은 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법현상에 의한 문자변화라고 할수 있다.
예컨대 手(손 수) 자를 보면, 소전은 다섯 손가락을 상징하는 곡선을 순방향 긋기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진간의 예에서는 90도 긋기가 사용되면서 곡선이 직선으로 단순화되고, 연결 부분은 성글게 처리된다. 이 과정에서 좌우의 긴 선은 짧은 점으로 줄어들었고, 반복되는 필법 속에서 다시 선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형태가 탄생했다. 진간 a, b, c, d는 모두 같은 시기 자료에서 확인되는 예로, 짧은 기간 안에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手의 부수로 쓰이는 좌측 손(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至 자에서도 같은 변화가 확인된다. 소전의 至는 순방향 긋기로 곡선과 치밀한 연결을 보인다. 그러나 진간의 至는 90도 긋기로 쓰여 곡선이 직선으로 변하고, 연결 부분은 성글어졌다. 또한 빠른 붓놀림으로 상부 두 점은 이어져 가로선으로 변하고, 큰 곡선은 짧은 직선으로 나뉘어 이후 土 기호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필법의 사용은 문자의 형태를 급격히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소전 至 / 진간 至
진간 至에서 새로운 필법에 의한 변화 과정을 볼수 있다.
소전은 순방향 긋기 필법을 사용하였고, 진간은 90도 긋기필법을 사용하고 있다.
- 간이지지(簡易之指) 와 생략
진간에서 시작된 기호화와 새로운 필법은 문자 변화를 추진하게된 두 가지 동력이었다. 상형의 제약에서 벗어나 기호로 전환되고, 새로운 필법이 더해지면서 문자는 예기치 못한 형태로 빠르게 변할 수 있었다. 그 변화의 양상은 겉으로는 복잡해 보였으나, 단순화해 살펴보면 그 속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관한 기록이 후한의 조일(趙壹, ad130~185)의 글에 남아 있다. 그는 고문을 중시하며 초서를 비판했지만, 그의 글 『비초서(非草書)』를 통해 당시 초서의 상황을 생생히 전해주었다. 특히 그가 사용한 “간이지지(簡易之指)”라는 표현은 문자 변화의 방향을 드러내는 핵심 개념이다. 필자는 이를 곧 ‘생략’이라 번역한다. 조일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까닭에 문자는 예초(隷草)가 되었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급함을 좇은 것일 뿐이며, 간략하고 쉽게 하려는 취지(간이지지)를 보여준 것이다.” (“故爲隷草 趨急速耳 示簡易之指” _ 『비초서』 중에서)
또한 그는 간이지지의 구체적 방법을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어려운 부분은 깎아내고 번잡한 부분은 생략한다. (刪難省煩)
겹으로 된 부분은 덜어내어 하나로 만든다. (損複爲單)
쉽게 쓰고 쉽게 알도록 하는 데 힘쓴다. (務取易爲易知)
이 기록은 통일 진시기의 문자를 일컬어 ‘예초(隷草)’라 불렀음을 알려주며,
그 변화의 본질이 곧 간이지지, 즉 생략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음호에 계속..)
조일(趙壹, ad130~185)
후한 영제(靈帝)시대 光和 원년(178)에 입경하여 활동한 학자. 고문을 중시하고 새로운 문자 특히 당시 초서를 비판한 장문의 글 <비초서(非草書)>가 전한다.

2025. 09 _ 월간추사 제 1호 : 至에 담겨진 초서 코드 1 영문초록(Abstract)
Here is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summary for the article "The Cursive Script Code within '至' (Part 1)."
This is a summary of the article "The Cursive Script Code within '至' (Part 1)" written by the calligrapher Hangbak Park Deok-jun, featured in Monthly Chusa, Issue No. 1. The article explores the origin and structural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Chōshū) by tracing the evolution of the character '至' (ji). The author moves beyond conventional calligraphy studies to personally investigate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The Starting Point of Cursive Script: The Great Character Transformation of the Qin Dynasty
The author posits that while it is difficult to pinpoint a systematic beginning for Cursive Script, its origin and development coincide with the great character transformation that occurred during the unified Qin Dynasty. At the time, the Qin Dynasty officially used Small Seal Script (Sōden), but for practical purposes, a simplified script known as Qin Clerical Script (Shinkan or Shinrei) was also used by lower-ranking officials to draft documents quickly and efficiently. The concurrent use of these two scripts was empirically proven by the discovery of large-scale wooden slips from the Qin era in Hunan province in 2002.
Key Evidence: The Morphological Change of the Character '至'
The author finds the core principle of Cursive Script's formation in the changing form of the character '至'.
• '至' in Small Seal Script (Sōden): Following the principles of traditional pictographs, it expressed the meaning 'an arrow arriving at the ground' as a single, connected form.
• '至' in Qin Clerical Script (Shinkan): In contrast, this script deconstructed the meaning, representing the 'arrow' and 'ground' components as two separate parts.
This transformation is highly significant. It marks the decisive moment when characters transitioned from being pictographs, which imitate the shape of objects, to becoming symbols (kihō) that represent meaning. The author identifies this 'symbolization' as the true starting point of Cursive Script.
Conclusion: Finding the Origin of Cursive Script in a Record of 'Disconnection'
Paradoxically, the author finds powerful evidence to support this claim in the writings of the Later Han scholar Xu Shen (許愼). In his work Shuowen Jiezi (說文解字), Xu Shen, who standardized characters based on Small Seal Script, criticized the practicality-driven Qin Clerical Script for corrupting tradition.
Xu Shen wrote: "The ancient script (Kōbun) was thus disconnected by the Qin Clerical Script (古文由此而絕矣)."
To Xu Shen, Qin Clerical Script was a negative development that signified a 'disconnection' from tradition. However, the author interprets this record from an entirely different perspective. He argues that the very 'disconnection' Xu Shen described is, in fact, strong counter-evidence proving that Qin Clerical Script marked the beginning of a completely new era in character history.
In conclusion, the author asserts that the precise moment Xu Shen criticized as a break from tradition—the emergence of Qin Clerical Script, which moved beyond pictographs toward symbols—is the very moment the history of Cursive Script began. The principles of 'abbreviation' and 'symbolization' inherent in Qin Clerical Script became the cor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all subsequent Cursive Script styles.

용선( 龍船, 귀선 龜船, 其, 96 * 128, 2025. 항백 ,한지 송연먹)
지난 여름 통영 여행중에 쓴 작품으로 나의 객중서(客中書)이다. 청동기 시대 그릇(其 고대문자)로 만든 기존의 작품이 거북선(귀선) 모형이나 용선(해신제등에서 제물을 실어 떠나보내는 용머리 모양의 그릇배)을 연상케 한다는 전언을 모티브로 한 작품. ‘거북선’ 이름을 가진 숙소에 소장.

서보(書譜) 읽기
연재를 하며..
서보(書譜)는 당나라 손과정이 남긴 서법 이론서입니다.
3,700여 자로 쓰였으며 전편이 초서로 기록되어 왕희지 시기의 초서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시적인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서법의 개념입니다.
한말·위진 이후 당대까지의 짧은 시기 기록이지만, 초기 서법 이론이기 때문에 이후 조맹부의 서법이나 조선의 주류 서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오히려 추사 서법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서법 이론의 깊은 의미와 깨달음은 독자에게 맡기고 이번 연재에서는 자구(字句)를 하나씩 짚어 읽어 가며 20여 년 전의 독서를 다시 정리 합니다. 필자의 세필로 다시 쓰여진 서보 작품으로 월간추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예가 항백 박덕준

3. 又云 吾書比之鍾張 鍾當抗行 或謂過之 張草猶當雁行
또 이르기를 “내 글씨를 종요, 장지와 비교하면 종요는 견줄만 하거나(抗行) 내가 낫고(過之) 장지의 초서에는 마치 안항(雁行)과 같다(장지가 앞선다).”

4. 然張精熟 池水盡墨 假令寡人 耽之若此 未必謝之 此乃推張邁鍾之意也
“그러나 장지의 정교하고 능숙한 면은 연못의 물이 다 먹물이 되어버렸을 만큼 열심히 노력하였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내가 이와 같이 (글씨공부에) 빠졌다면 꼭 그에게 뒤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왕희지가)말했다.
이는 곧 장지를 높이 올리고 종요는 뛰어 넘었다는 뜻이다.

5. 考其專擅 雖未果於前規 摭以兼通 故無慙於卽事
그 개별 부문의 서체에 대해 살펴보면 (왕희지가) 비록 앞선이(종요의 해서와 장지의 초서)의 본령을 넘을만한 성과는 없다 하더라도 (초서와 해서를) 두루 꿰뚫어 습득했기 때문에 “卽事”에서는 부끄러울 바가 없을 것이다.

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5. 10 | 제 2호
발행인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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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 월간추사 편집부 / Art Director 김 나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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