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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6. 02 제 6호

​월간추사 2026.02_제 6호 항백 박덕준 월간추사

​항백 박덕준  월간추사www.hangbak.com

​편집부 아트디렉터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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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品格之高下不在迹在意”
(품격의 높고 낮음은 자취(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意)에 있다)
- 추사어록 중에서

이 글은 추사 서법 “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화법은 장강 만리에 있고, 서법은 고송 일지에 있다)”의 협서에 쓴 글이다. ‘자취(迹)에 있지 않다’는 형태를 따르는데 있지 않다고 이해한다. 
다른 글에 자취(迹) 대신 형사(形似)라고 쓴 글이 있다. 
형사(形似)와 의(意)는 대체의 영역이며 좌우 양단에 있는 대척점에 위치 한다. 
의(意)에 따라 구현된 결과를 의경(意境)이라 하며 서법에서는 이를 서경(書境)이라 하였다. 
드러난 서경을 통해 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항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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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2026. 02 | 제6호​Contents​至 문자에 담긴 초서코드 (월간추사 1-4호)초서원리와 12논쟁 (월간추사 5호)초서를 다시 묻다 왜 초서를 다시 묻게 되었는가기존 문자사 배열과 설명의 한계예서·초서 관계에 대한 재검토진말 문자 대변혁이라는 기준 제시새로운 모델(항백모델)의 설정5시기 구분의 필요성과 방법론 정립초서원리와 12논쟁 영문초록(abstract)한시 감상이달의 작품서보(書譜)읽기서보읽기(6) - 세필로 다시 쓴 서보 15, 16, 17, 18번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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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를 다시 묻다항백 박덕준 (서예가)초서를 다시 묻다 : 도입부 안내이 글은 책으로 집필 중인 원고의 도입부 전체입니다.이번 호에서는 결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왜 초서를 다시 묻게 되었는지 그 질문이 어떤 장면과 경험을 거쳐 생겨났는지를 차분히 정리합니다.나는 오랫동안 초서를 공부하고 써왔습니다.그러나 일정 시점 이후 기존의 설명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개별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초서를 이해하는 틀 자체에 균열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도입부는 그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질문이 만들어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아직 하나의 주장도, 하나의 결론도 없습니다. 다만 ‘왜 묻게 되었는가’라는 문제만이 놓여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초서의 시작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 예서에서 초서가 나왔다는 통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진말이라는 시기가 문자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존 설명이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과정입니다.《월간추사》는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부분이 아니라 단계로 공개되는 지면입니다. 이번 2026년 2월 - 월간추사(제 6호)는 그 첫 단계로서 도입부 전체를 한 호에 담아 독자에게 공개합니다. 이후 월간추사에서는 도입부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바탕으로 문자 변혁의 실제 구조와 초서가 생성되는 조건을 하나씩 검토해 나갈 예정입니다.지금은 아직 초서를 다시 묻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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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되지 않는 몇 가지 장면장면 ①왜 所의 초서는 정자와 다르고, 예서와 닮아 있는가 所 (所 정자) <所초서> <所예서> 所 자의 초서를 처음 마주하면 자연스러운 기대가 하나 생긴다. 초서라면 정자에서 출발해 획을 줄이고 연결한 형태일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실제 所의 초서는 그렇지 않다. 정자의 형태를 빠르게 쓴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며, 오히려 예서의 형태와 훨씬 가깝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왜 초서는 정자와 닮지 않고 예서와 닮아 있는가. 초서가 정자 이후의 속필이라면, 이 닮음의 방향은 설명되지 않는다.더 이상한 점은 이 현상이 所 한 글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구조의 다른 문자들에서도 초서는 반복해서 예서의 형태를 호출한다.장면 ②來의 초서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다. 來 (來 정자) <來초서> <來예서> 來 자의 초서를 보면, 앞선 所의 경우보다 더 큰 혼란이 생긴다. 먼저 정자에서 출발해 보려 한다. 그러나 획을 줄이거나 연결해서 설명하기에는 형태의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어디를 생략했고, 어디를 이었는지를 정자의 구조 안에서는 짚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예서로 시선을 옮겨본다. 예서의 파형과 전개 방식이 초서와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곧 막힌다. 예서의 구조를 전제로 해도 이 초서의 필획 배치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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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이상함은 한 단계 더 깊어진다. 所의 초서는 예서로 설명될 수 있었지만, 來의 초서는 정자로도, 예서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초서는 도대체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가. 이 장면은 초서가 어느 한 서체를 빠르게 쓴 결과가 아니라, 다른 문자 환경에서 작동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장면 ③
年의 초서는 어디서 왔는가

 

                                                                                年 (年 정자) 
   <年초서>           <年진간>            <예서>      

年 자의 초서를 마주하면, 앞선 두 경우보다 상황은 더 분명해진다. 정자에서 출발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획의 생략이나 연결로는 이 형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서로 시선을 옮겨보아도 결과는 같다. 예서 특유의 파형과 전개 방식은 이 초서의 구조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이 초서는 예서를 빠르게 쓴 모습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어느 서체에서 파생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진간 자료를 함께 놓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이 초서의 필획 배치와 흐름은 진간 문자에서 확인되는 운용 방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年의 초서는 정자도 아니고, 예서도 아니다. 이 초서는 진간이라는 문자 환경 안에서만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장면은 초서의 출발점을 다시 묻게 만든다. 초서는 기존 서체의 붕괴가 아니라, 이미 다른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던 문자 운용 방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 세 장면은 서로 다른 글자를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所의 초서는 정자에서 멀어지고 예서에 가까워진다. 來의 초서는 정자에서도, 예서에서도 출발점을 찾지 못한다. 年의 초서는 마침내 정자와 예서를 모두 벗어나, 진간이라는 문자 환경 안에서만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흐름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초서는 언제나 기존 서체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았고, 설명하려는 기준이 바뀔수록 그 출발점은 더 과거로 이동한다. 이 장면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초서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별 문자의 문제가 아니라, 초서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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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이상함들

 


   <五초서>              <事초서>             <至초서>
                    
五·事·至의 초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함은 형태의 차이와 무관하게 반복된다. 각 글자는 구성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지만 초서에서는 공통적으로 정자의 구조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예서와 닮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예서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초서의 형태가 기존 서체의 변형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특정 글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료를 바꾸어도, 글자를 달리 놓아보아도 비슷한 막힘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초서의 변화 방향이 아니라 초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는 사실이다. 설명은 시도되지만 결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문자사의 흐름 위에 다시 놓아보면 문제는 개별 초서의 특이성에 있지 않다. 문자를 배열해온 기존의 질서 속에서 초서가 차지해야 할 자리가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문제로 떠오른다. 초서를 정자 이후의 파생으로 두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너무 많고 예서의 변형으로만 보기에도 동일한 막힘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초서를 문자사의 주변부로 밀어내기에는 이 이상함은 지나치게 넓고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초서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문자사를 배열해온 방식 속에서 초서는 과연 어디에 위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앞서 살펴본 이상함들은 계속해서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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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문자사 배열이라는 전제
초서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가 문자를 어떻게 배열해 왔는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자사는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이해되어 왔다.

소전 → 예서 → 해서 / 행서 → 자전 문자(정자)

이 배열은 문자가 점차 정제되고, 점점 읽기 쉬운 표준 형태로 수렴해 간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초서는 이 흐름 속에서 대개 해서 이후에 파생된 비정형적 서체이거나 행서의 극단적 형태로 처리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같은 문자로 인식해 왔던 해서(楷書)와 정자(正字)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해서는 당대의 문자 운용 속에서 정리된 표준 문자이며, 이후 청대에 자전에 수록되며 규범으로 고정된 문자를 정자(자전 문자)라고 할수 있다. 두 문자는 종종 동일시 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기와 조건에서 형성되었다. 이 차이는 초서를 비롯한 문자 변천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앞으로 주의 깊게 확인해 가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제 앞서 살펴본 초서 사례들을 이 배열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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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고 보면, 글자마다 전혀 다른 양상이 드러난다. 所의 초서는 자전 문자(정자)의 자리에 놓기 어렵고, 예서 쪽으로 이동시켜야만 형태가 이어진다. 來의 초서는 예서와 해서 어느 쪽에도 안정적으로 안착하지 못한다. 年의 초서는 이 배열 전체에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기존의 흐름 바깥으로 밀려난다. 반면 至의 초서는 예서 이후의 문자들과 비교적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어디에 놓아도 큰 무리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또 하나 분명하게 관찰되는 점은 해서와 정자(자전 문자)의 관계다. 所와 來의 경우 당대 해서에서 청대 자전 문자로 이어지는 형태적 연속성이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年과 至는 초서와 무관하게 해서에서 자전 문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 차이는 초서의 문제가 아니라 해서와 자전 문자(정자)가 모든 글자에서 동일한 계승 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초서는 과연 이 문자사 배열의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초서를 완성된 서체로 전제하기 전에 그것이 처음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자리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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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의 시작을 다시 묻다
- 왜 ‘초서의 시작’을 묻게 되었는가

내가 초서의 시작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초서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해 왔고 그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한 원리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초서의 결과를 정리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진행 과정 자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초서를 실제 자료와 작품 속에서 대하면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초서의 변화는 어느 한순간에 급격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빠르게 흘려 쓴 속필의 결과로 갑자기 등장한 서체라고 보기에는 그 변화의 폭과 방향이 지나치게 단계적이었다. 이 점에서 초서를 예서에서 파생된 단순한 속필 서체로 이해하는 기존의 설명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며 진행된 변화의 과정으로 보였고 그 과정 안에는 일정한 방향성과 반복되는 선택이 존재했다. 이러한 인식은 초서를 하나의 완성된 형식으로 보기보다 변화가 진행되는 구조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초서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정리하고자 했고, 그 과정이 출발한 시작 지점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시작 지점이다. 
과정에는 반드시 출발점이 있으며 그 출발점을 놓친 채로는 어떤 원리도 온전히 드러날 수 없다고 보았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초서를 연구해 온 많은 시도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 역시 이 시작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초서는 그렇게 감각이나 숙련의 영역으로 남았고, 원리로 설명되지 못한 채 흘러왔다.
그래서 나는 초서의 시작에 집중했다. 그 지점만은 분명히 붙잡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설령 초서의 모든 원리를 단번에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가장 근원적인 몇 가지는 그 시작에서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 탐색은 조급함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두르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집중하고 풀릴 때까지 놓지 않는 방식으로 초서의 출발점을 따라가 보기로 한 것이다.


- 예서에서 초서가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

초서의 시작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설명은,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는 기존의 주장이다. 두 서체의 자형이 거의 같고, 하나는 정서이며 다른 하나는 생략된 형태라는 점에서, 정서에서 생략이 진행되며 초서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설명은 표면적으로 매우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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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논리는 오랫동안 설득력을 가져왔다. 개별 초서를 세밀하게 대조하지 않는 한-예서의 자형이 줄어들고 연결되며 초서로 이행했다고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나 역시 이 설명이 왜 강하게 작동해 왔는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초서를 하나씩 실제 자료와 작품 속에서 대면하며 살펴볼수록, 이 설명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두 서체의 자형이 닮아 있다는 사실은, 예서에서 초서가 나왔을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반대의 가능성, 즉 두 서체가 공통의 출발점을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형태의 닮음만으로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하는 것과 아버지가 아들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닮음은 사실이지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시간이다. 선후관계를 확정하지 않은 채 닮음을 근거로 계보를 정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예서에서 초서가 나왔다’는 주장을 곧바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출발점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초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지 않는 한, 두 서체의 닮음은 언제까지나 설명의 근거가 아니라 설명되어야 할 결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완성된 서체 사이의 관계를 비교하기보다, 초서가 처음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자리, 다시 말해 그 시작 지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예서에서 초서가 나왔다는 인식은 어떻게 굳어졌는가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는 인식은 단순한 후대의 추론이 아니라, 조선 후기 추사(秋史)의 글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추사는 『남북서파론』을 인용하며 초서가 한말의 예서에서 비롯되었다는 취지의 설명을 전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때 말하는 ‘예서’가 용어상의 혼선이나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한말에 정립된 예서 서체 자체를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추사의 설명은 예서라는 말의 의미가 불분명해서 생긴 오해가 아니라, 초서의 출발을 한말 예서로 이해한 분명한 인식 위에 서 있다.
이러한 인식은 충분히 자연스럽다. 한말 예서와 초서의 자형은 거의 동일하며 하나는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생략된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전제로 하면 정형화된 예서에서 속필과 생략을 통해 초서가 파생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을 가진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용어를 바로잡는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추사와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서예 인식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선택된 계보 이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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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점에서, 추사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추사는 단순한 문헌 인용자가 아니라 서예를 보는 눈 자체가 정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초서의 출발을 한말 예서로 이해했다면 그 판단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헌을 더 따라가 보니 이 인식과 정반대의 주장을 분명하게 제시한 기록들이 눈에 들어왔다. 채옹(蔡邕 132–192)과 조일(趙壹 – 약 192)의 글이다.
이들은 초서의 출발을 한나라가 아니라 진나라 말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서를 예서 이후의 파생으로 이해하는 설명과 달리, 초서가 이미 더 이른 시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본 것이다. 이 대목은 나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 만약 초서의 시작을 두고 한말 예서설과 진말 시작설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문제는 더 이상 ‘누가 맞는가’를 가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초서의 시작 지점을 실제로 특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채옹(蔡邕 132–192 후한 말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예서·금석문에 정통했으며 문자 운용과 서체 변천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남겼다.)은 초서를 한나라 말의 산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초서가 이미 진나라 말에 나타났으며 문자의 속필이나 편의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 문자 운용 방식과는 다른 흐름 속에서 발생했다고 인식했다. 초서를 예서 이후의 파생으로 설명하지 않고, 더 이른 단계에서 시작된 현상으로 본 것이다.
조일(趙壹 – 약 192, 후한 말의 문인으로 생몰연대는 정확히 전하지 않으나 채옹과 동시대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초서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은 이 입장을 한층 더 분명히 드러낸다. 그는 초서를 근거 없는 문자, 고문을 계승하지도 않은 허황된 문자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은 초서를 부정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지만, 동시에 초서가 예서 이후에 생겨난 부차적 산물이 아니라, 이미 기존 문자 질서와 충돌할 만큼 이른 시점에 등장했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 두 기록은 방향은 다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난다. 초서는 한말 예서의 부속물이 아니라, 그 이전, 적어도 진나라 말에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이다.


- 예서라는 용어가 만들어낸 혼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예서’라는 용어의 사용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예서라고 하면 한나라 말에 완성된 예서, 즉 흔히 말하는 한예(漢隸)를 가리킨다. 그러나 예서는 특정 시기의 서체 명칭이라기보다, 이미 진나라 시기부터 존재했던 문자 운용 방식을 포괄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진나라의 예서는 흔히 진예(秦隸)라고 불리지만, 공식적인 서체 명칭은 어디까지나 예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초서는 예서에서 나왔다’는 말은, 예서를 진예로 한정할 경우 반드시 틀린 주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예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 시기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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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를 한말에 정립된 예서로 이해하는지, 진나라 시기의 예서로 이해하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혼선은 『급취편』의 서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예서를 해체하여 나온 것을 초서라 한다’ 는 취지의 설명이 등장한다. 이 설명 역시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다만 이때의 예서는 한말에 정립된 예서가 아니라 진나라 시기의 예서, 즉 진예를 가리킨다는 점이 분명히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예서를 한예로 이해하느냐, 진예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 는 말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시기를 밝히지 않은 채 예서라는 용어만 사용할 경우, 초서의 시작을 둘러싼 논의는 쉽게 다른 결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 진말 시기는 문자 대변혁과 겹친다

그렇다면 초서의 시작을 진나라 말로 설정한 가설에서 출발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우연히도 한자라는 문자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진나라 말은 문자 운용 전반에서 일종의 대변혁이 시작되는 시기다. 문자는 더 이상 상형의 규범 안에 머물지 않고 점차 기호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만약 초서의 시작이 이 시점에 놓여 있다면 초서는 단순한 속필이나 예서의 파생 서체가 아니라, 이 문자 대변혁과 같은 흐름 속에서 작동한 현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열린다.
채옹(蔡邕 132–192)과 조일(趙壹 – 약 192)이 초서의 출발을 진나라 말로 본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글은 초서 자체의 미학적 평가라기보다 문자 질서 전체가 급격히 흔들리던 이 시기를 주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다. 초서를 문제 삼으면서도 그 출현 시점을 앞당겨 설정한 이유는 초서가 등장할 수 있었던 문자 환경의 변화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서의 시작을 진나라 말에 두고, 이 시기의 문자 대변혁 속에서 초서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고 작동했는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서를 하나의 완성된 서체로 전제하기보다 문자 운용 방식이 전환되던 이 시점에서 어떤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이 출발점을 기준으로 삼으면 초서를 둘러싼 기존의 설명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초서의 성립 시점을 한나라 말로 고정할 때와 달리 예서와의 관계, 해서로의 이행, 문자 생략의 방향과 속도, 나아가 문자 계통 전체의 구조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초서는 더 이상 ‘속필의 산물’이나 ‘예서의 변형’으로만 설명되지 않으며, 문자 기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하나의 문자 운용 체계로 위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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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초서의 시작을 진나라 말로 다시 놓았을 때 드러나는 문자 변화의 실제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통해 새롭게 보이는 문자사의 전개 방식을 하나씩 확인해 보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이를 하나의 분석 틀로 묶어 초서 형성의 원리와 문자 변천의 주요 국면들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이 도입부에서 나는 초서의 시작을 다시 묻고, 그 가능성을 하나씩 탐색하는 자리에서 출발했다. 초서를 예서의 파생으로 이해해 온 기존의 설명이 실제 문자 사례 앞에서 어떻게 막히는지 확인하고, 예서라는 용어가 만들어낸 혼선과 문자사 배열의 전제를 다시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는 초서를 설명하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초서가 처음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자리를 특정하기 위한 탐색에 가까웠다.
이러한 탐색을 바탕으로 문자 자료와 실제 운용 환경을 검토한 결과,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초서의 작동은 한나라 말에 갑작스럽게 성립한 결과가 아니라 진나라 말 문자 대변혁과 동시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초서는 한나라 말에 완성된 서체로 이해되기보다 그 출발 시점을 진나라 말로 분명히 특정할 수 있는 문자 체계로 보아야 한다.
이 도입부는 바로 이 결론을 미리 제시한다. 이후의 논의는 초서의 시작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두고 다시 가설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이 출발점을 기준으로 문자 변천의 구조를 다시 읽어가기 위한 과정이 된다.
초서의 시작을 진나라 말로 확인한 이후, 문자사의 전개는 더 이상 기존의 서술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문자 변천의 중심 계열은 소전에서 한나라 말로 곧바로 이어지는 단선적 흐름이 아니었고, 진간을 기점으로 예서와 초서가 병존하며 분화하는 또 하나의 구조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놓친 채 문자사를 서술할 경우, 초서의 형성 원리뿐 아니라 이후 문자 체계 전반 역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확인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글은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출발한다. 초서의 시작을 진나라 말로 다시 설정함으로써 드러난 문자 변화의 실제 구조,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새로운 모델(항백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이 모델을 통해 초서 형성의 원리와 문자 변천의 다섯 시기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
- <소전 → 진간> : 문자계열 전환이라는 관점

여기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모델(항백모델)은, 소전에서 진간으로의 이동을 단순한 서체 변화나 문자 개량의 문제가 아니라 문자계열 자체가 전환되는 사건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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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에서 소전은 갑골문 · 금문으로 대표되는 고대문자를 정리한 고문(古文) 체계의 마지막 단계이며, 진간은 그 연장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성격의 문자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소전과 진간은 계승되거나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관계가 아니다. 소전은 상형을 기반으로 한 고대 문자 질서를 정비하며 종결되는 문자이고, 진간은 그 질서가 해체된 이후, 문자가 기호화 · 생략 · 연결을 전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새로운 문자 환경이다. 이 지점에서 문자사는 하나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계열 자체가 전환되는 분기점을 맞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나라 말은 문자사의 연속 구간이 아니라 고문 체계가 단절되고 새로운 문자 계열이 시작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항백모델은 바로 이 지점, 즉 소전에서 진간으로 이동하는 문자계열 전환을 이후 문자 변천 전체를 이해하는 기준점으로 설정한다.


새로운 모델


         진 ----l------------ 한 ------------l----- 위진 남북조 -----l-----------당 ---------l
 
        소전
         │
        진간             공통 운용                한말
                                 ├─예서 정립 [예서 계열]         예서 기반 정서         해서
                                 └─초서 정립 [초서 계열]         초서 기반 정서         행서·초서


[새로운 문자사 흐름 모델 해설 ]

소전과 진간은 시간적으로 선후 관계에 놓인 문자가 아니라 일정 기간 동시대에 병존한 문자이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계승이나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문자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전환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진간 단계에서 문자는 아직 예서와 초서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하나의 문자 운용 방식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문자는 예서와 초서라는 분리된 서체가 아니라 기호화·생략·연결이라는 공통된 원리를 공유하는 하나의 문자 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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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말에 이르러 이 공통 운용 방식은 점차 분화되기 시작한다. 문자 운용의 방향과 선택이 달라지면서 예서와 초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독립적인 성격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 분화는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서 파생된 결과가 아니라 같은 출발점에서 갈라진 병렬적 전개에 가깝다.

한말에 이르면 예서와 초서는 각각 독립된 문자 체계로 정립되며 비로소 예서 계열과 초서 계열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이 시점에서 두 계열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문자 환경에서 분화된 병렬 계열로 자리 잡는다.

이후 남북조 시기에는 문자 체계의 정리와 축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한말에 형성된 예서 계열을 기반으로 한 정서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초서를 기반으로 하는 또 하나의 정서화 작업 역시 병행된다. 이 시기는 혼란기가 아니라 두 문자 계열이 나란히 운용되며 축적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당대에 이르러 이 두 흐름은 제도적으로 정리된다. 예서 계열은 해서로 정비되고 초서 계열은 행서·초서로 흡수·조정되며 하나의 문자 질서로 정착하게 된다.

항백모델의 실제
- 문자 변천의 다섯 시기

앞에서 제시한 새로운 모델(항백모델)은 문자사의 전개를 하나의 연속적 흐름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소전에서 진간으로 이어지는 문자계열 전환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후 문자 변천이 어떤 방식으로 분화·정립되어 갔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이 장에서는 그 구조를 시간 위에 펼쳐본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다섯 시기는 가설적으로 설정된 구간이 아니라, 문자 자료와 실제 운용 양상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변천의 국면들이다. 각 시기는 서체의 명칭이나 왕조의 교체를 기준으로 나뉘지 않으며, 문자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이 다섯 시기는 문자 변천의 결과를 요약한 목록이 아니라 항백모델이 실제 문자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분석의 틀에 해당한다. 이하에서는 이 시기 구분을 따라 진간을 기점으로 시작된 공통 운용이 어떻게 분화되고 정립되며 다시 조정되어 갔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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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서의 변화를 ‘시기’로 나누게 되었는가
초서의 시작을 하나의 지점으로 특정하려는 시도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초서는 단일한 순간에 출현한 서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해 온 문자 운용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길고 복합적인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전체를 하나의 연속선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층위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초서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흐름을 단순화하여 시기별로 검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실제 문자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초서의 변화는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시기마다 작동 방식이 달라지는 국면을 반복해서 드러낸다. 어떤 시기에는 문자 구조의 해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어떤 시기에는 그 결과가 조정되거나 재배열되며 또 다른 시기에는 서로 다른 계열이 병존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양적 변화가 아니라, 문자 변화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가 전환되는 지점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내가 주목하게 된 또 하나의 점은 문자 변화가 언제나 문자 내부의 문제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서의 전개는 각 시기의 정치적·사회적 환경, 행정 체계의 변화, 학습과 기록의 방식과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함께 살펴볼 때, 왜 어떤 시기에는 초서의 변화가 유독 빠르게 진행되었는지 왜 초서 학습과 실험이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시기 구분은 문자 형태의 변화를 정리하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시의 서법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초서를 둘러싼 시대적 조건과 서법적 경향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경우, 초서의 급격한 전개와 확산은 다시 개인의 개성이나 속필의 문제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나는 이러한 환원을 피하기 위해 초서의 변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되 그 흐름이 시대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기 구분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다섯 개의 시기는 초서를 인위적으로 나눈 분류가 아니다. 문자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그것이 놓여 있던 사회적·문화적 조건을 함께 고려했을 때 드러나는 문자 운용 방식의 전환 지점들이다. 이 시기 구분은 초서의 역사를 단순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초서가 왜 그 방식으로 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이다.

초서 변화의 5시기 구분 ― 개요

이 글에서는 초서의 변화를 다섯 개의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 구분은 초서를 세분화하거나 분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초서가 각 시기마다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최소한의 틀이다. 각 시기는 문자 형태의 변화뿐 아니라, 그 변화가 놓여 있던 정치·사회적 조건과 서법 활동의 경향을 함께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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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시기는 소전 중심의 문자 체계가 해체되며 진간을 매개로 새로운 문자 운용 방식이 출현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기존 소전 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문자 체계로의 전환이 태동하여 문자 운용의 실제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제2시기는 제1시기에서 시작된 변화 패턴이 아직 특정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되는 단계이다. 문자 구조의 생략과 연결, 필획 운용의 실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지만 이것이 예서나 초서라는 명확한 귀속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변화는 축적되지만 서체로서의 경계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제3시기는 이러한 축적 위에서 초서와 예서의 작동 방식이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생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초서적 운용은 점차 하나의 방향성을 갖게 되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초서는 독자적인 계열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초서 학습과 실험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변화의 속도 또한 가장 빠르게 진행된다.
제4시기는 급격한 변화 이후의 조정 단계이자 예서와 초서가 각각의 작동 원리를 갖는 두 개의 문자 체계로 정립되는 시기이다. 앞선 시기에서 축적된 변화는 이 단계에서 조율되고 재정렬 되며 예서와 초서는 더 이상 하나의 문자 운용 방식 안에서 혼재되지 않는다.
제5시기는 이러한 흐름 위에서 후대 문자 체계가 정착되는 단계로 남북조 시기와 당대를 함께 포괄한다. 남북조 시기에는 앞선 시기에서 분화된 예서 계열과 초서 계열의 문자가 다시 정서로 환원되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두 계열의 문자가 혼재된 상태로 병존한다. 이 과정은 혼란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자 운용 원리가 정리·조정되는 단계에 가깝다. 이후 당대에 이르러 이 두 흐름은 제도적으로 정리된다. 예서 계열은 해서로 정비되고 초서 계열은 행서와 초서로 흡수·계승되며 이후 문자사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 다섯 개의 시기는 초서의 역사를 단순화하기 위한 구분이 아니다. 문자 구조의 변화, 서법 실천의 양상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적 조건이 맞물려 드러나는 문자 운용 방식의 전환 지점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초서의 시작을 다시 묻고 그 질문이 도달하게 된 지점까지를 정리했다. 다음 호부터는 이 출발점을 기준으로 문자 변천의 첫 번째 시기로 들어간다. 

이 원고 및  출간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 없이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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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 월간추사 제 6호 : 초서원리와 12논쟁(5호) 영문초록(Abstract)

Concise Summary -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and the Twelve Debates

Debate 1 —
The Problem of Kangxi Dictionary Adopting the Small Seal Script Lineage as the Standard
Debate 2 —
The Exclusion of the Actual Historical Flow of Clerical, Cursive, and Regular Script Lineages
Debate 3 —
After Small Seal Script, Characters in the Qin Bamboo Slips Are No Longer Pictographic
Debate 4 —
Cursive Script Begins in the Qin Dynasty, within the Qin Bamboo-Slip Context
Debate 5 —
The Transition from Pictograph to Sign Is Governed by Order, Not Arbitrary Change
Debate 6 —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Scripts Are Not Based Solely on Clerical Script,
but on a Parallel Structure of Clerical and Cursive Lineages
Debate 7 —
Variant Characters Should Be Judged by Structural Difference, Not by Formal Difference
Debate 8 —
The De (得) Radical Variations in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as a Reverse Reconstruction of Cursive Principles
Debate 9 —
The Establishment of Tang Regular Script —
Not the Resolution of Chaos, but the Selection of a Standard
Debate 10 —
Character Change Emerges Through the Conjunction of Script Form and Brush Technique
Debate 11 —
Cursive Script Principles Form a Verifiable Structural System
Debate 12 —
The Blind Spot in the Kangxi Dictionary Regarding the History of Character Trans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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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

이 책자는 두보의 시 「만흥구수」를 바탕으로 제작된 항백 문자도의 설계 기록이다. 이 연재는 「만흥구수」 아홉 수를 한 수씩 나누어 총 아홉 회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각 회차에는 문자 설계 페이지와 함께 해당 시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다. 한시 해설은 한시 강독을 맡고 있는 문종훈 선생이 맡아 주었다.  
서법 : 항백    해설 : 문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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漫興(만흥) 제 1 수
                                                                                                  해설: 문종훈
眼見客愁愁不醒 (안견객수수불성)
나그네 설움을 눈으로 보면서도 설움에서 깨지 못하고 있는데

無頼春色到江亭 (무뢰춘색도강정)
믿지 못할 봄빛은 강가 정자에 이르렀구나.

即遣花開深造次 (즉견화개심조차)
바로 꽃 피게 함이 너무 급작스럽고,

便敎鶯語太丁寕 (변교앵어태정녕)
곧장 꾀꼬리 울게 함도 너무나 간절하구나.
-


客愁: 객지에서의 쓸쓸한 마음. 전체 만흥 구수를 관통하는 주제어.
春色: 봄빛. 1수의 주제어.
即: 4구의 便과 같은 뜻. 두보는 이런 부사 구사에 매우 능숙함.
遣: 4구의 敎와 같은 뜻. 여기서는 보내다, 가르치다의 뜻이 아닌 使(~~로 하여금, ~~하게 하다)의 뜻. 
   결국 花開와 鶯語를 하게 하는 주체가 春色이므로 遣/敎를 썼음.
造次: 갑작스럽다(倉猝;匆忙)
鶯語: 鶯聲과 같음. 꾀꼬리 울음소리.
丁寧: 하는 말이 간절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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漫興(만흥) 9首
이 시는 두보가 760년 성도로 옮겨온 다음 해인 761년 봄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제목인 漫興(만흥)은 “흥을 따라서”란 뜻이다. 자전을 찾아보면 漫(만)이 질펀하다의 뜻도 있지만 隨意(뜻대로 하다)라고 되어 있다. 계절이 봄이었으므로 결국 ‘봄의 흥을 따라’라고 해석함이 옳다고 본다.
형식으로 보면 7언으로 되어 있으나 律格(율격)이 있는 율시가 아닌 그 이전의 漢나라 시절 樂府詩나 成都 지방의 민간 노래인 竹枝詞, 즉 칠언·4구·고체·평운으로 쓰인 시라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漫興은 가장 ‘문인성이 낮고’ ‘노래성이 높은’ 작품군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문인성, 대구, 비유 등의 특성인 율시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대로 쓴 시라 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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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제 6호 이달의 작품

항백 문자도  Hangbak Character Paintings          (두보시 만흥 1~9수 66×95 한지, 2024)
「만흥」의 구절을 바탕으로 문자 구조를 해체하고 재배열한 문자도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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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품>

작품 비평 │ 항백문자도 〈만흥구수〉 중 1

이 작업은 문자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문자가 화면의 필수 조건이 되지 않아도 성립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여기서 문자를 버린다는 것은 문자를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행위가 아니라
문자가 이미 충분히 작동했음을 인정하고 그 역할을 물리는 판단에 가깝다.

이 문자도에서 중심이 되는 질문은 분명하다.
문자를 버리고도 서법이 성립하는가 라는 조건이다.
이 작업은 그 조건을 문자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자를 숨기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문장은 화면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 문장이 만들어낸 판단의 흔적은 화면 전체에 남아 있다.

문자는 출발점으로서 화면을 조직하지만
일정 지점 이후에는 감상의 경로를 지배하지 않는다.
문자가 물러난 자리에 남는 것은 공백이 아니라
밀도와 간격, 선택과 멈춤에 대한 판단이 만들어낸 구조다.
이 화면은 문자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으며
감흥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이 작업에는 두보의 「만흥구수」를 바탕으로 한 문자도 책자가 선행되어 있다.
그러나 최종 화면에서는 문장이 전면에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선택이 이루어진다.
문장은 숨겨지지만 그 문장이 끝까지 작동한 결과만이 화면에 남는다.
이 문자도는 문자를 새롭게 만들거나 해체하려는 작업이 아니다.

문자와 문장이 물러난 이후에도
감흥은 성립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나의 화면으로 밀어붙이며
그 지점에서 관람자와 직접적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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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書譜) 읽기


연재를 하며..

서보(書譜)는 당나라 손과정이 남긴 서법 이론서입니다. 
3,700여 자로 쓰였으며 전편이 초서로 기록되어 왕희지 시기의 초서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시적인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서법의 개념입니다. 
한말·위진 이후 당대까지의 짧은 시기 기록이지만, 초기 서법 이론이기 때문에 이후 조맹부의 서법이나 조선의 주류 서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오히려 추사 서법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서법 이론의 깊은 의미와 깨달음은 독자에게 맡기고 이번 연재에서는 자구(字句)를 하나씩 짚어 읽어 가며 20여 년 전의 독서를 다시 정리 합니다. 필자의 세필로 다시 쓰여진 서보 작품으로 월간추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예가  항백 박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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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謝安 素善尺櫝(牘)而 輕子敬之書 
    子敬 嘗作佳書 與之 謂必存錄 安輒題後答之 甚以爲恨
 
사안은 평소 척독을 좋아하였으나 자경의 글씨를 가벼이 여겼다. 자경이 잘 쓴 글씨를 그(사안)에게 주면서 꼭 그것을 보존하라고 말했다. 사안은 대수롭지 않게 (그 척독) 뒷면에 적어서 그에게 답하였다. 그 때문에 (자경이)매우 원망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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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安嘗問敬 卿書何如右軍 答云 故當勝
   安云 物論 殊不爾 子敬又答 時人那 
   得知

사안이 일찍이 자경에게 물었다. “경의 글은 우군(왕희지)에 비해 어떠한가?” 자경이 대답하기를 “당연히 (제가) 낫지요”하니 사안이“ 세상의 평판은 달리 그렇지 않던데?” 하니 자경이 또 대답하기를 “시속의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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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敬雖權以此辭 折安所鑒 自稱勝父 不
    亦過乎 且立身揚名 事資尊顯 勝母之
    里 曾參不入

자경이 비록 임기응변으로 이렇게 말하여 사안이 살펴본(생각한) 바를 끊었지만, 스스로 아버지 보다 낫다고 말한 것은 역시 지나치지 않은가. 또 입신양명은 부모를 섬겨서 이름을 드러나게 함이고, 승모(어머니보다 낫다는 뜻)라는 이름의 마을에 (효의 대명사인)증삼은 들어가지도 않았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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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以子敬之豪翰 紹右軍之筆札 
    雖復粗傳楷則 實恐未充箕裘

자경의 글씨로써 우군의 글씨를 잇는다면, 비록 법칙의 대강을 전수 받아 반복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부친 전래의 가업(서법의 핵심)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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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6. 02  |  제 6호

저자,발행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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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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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항백의 아트갤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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