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6. 01 제 5호

“書之爲道虛運也”
(서법이 예술이 되는 것은 공간(허)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필획(黑)을 긋는 순간 동시에 공간(白)이 생기며
이 둘은 서로를 살려주면서 공존한다.
빈 공간(白)은 아직 쓰지 않은 곳(無)이며
필획(黑)은 그 無를 통해 자신의 구체적 형상을 드러낸다.
서법의 아름다움은 완성된 형상(形)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사이(間)의 미’에 있다.
- 추사어록 중에서

월간추사 2026. 01 | 제5호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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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에 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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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 문자에 담긴 초서코드 _ (월간추사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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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연재에서는 至 문자를 통해 초서가 통일 진 시기라는 구체적인 역사 조건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상형에서 기호로 전환되는 구조적 변화를 거쳐 형성되었음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생략과 연결이라는 일정한 원리가 이후 문자 변화 전반으로 확장된다는 점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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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 원리와 12논쟁 (월간추사 5호)
1~4회 연재에서 밝혀진 내용은 기존 초서 연구의 설명과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그 결과, 초서의 시작 시기와 형성 방식에 대해 기존 주장들과 불가피한 충돌이 발생한다. 본고는 이 충돌을 논쟁으로 확대하기보다, 충돌 지점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차분히 점검하는 데 목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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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에 담겨진 초서 코드 4 영문초록(Abstract)
항백 초서 연구 이력
이달의 작품 / 표지 작품
서보(書譜)읽기 -
서보읽기(5) - 세필로 다시 쓴 서보 11, 12, 13, 14번 문장

초서원리와 12논쟁 - 항백 박덕준
앞선 연재에서는 至 문자를 통해 초서가 통일 진 시기라는 구체적인 역사 조건 속에서 시작되었고, 상형에서 기호로 전환되는 구조적 변화를 거쳐 형성되었음을 확인했다. 이 결론은 기존 초서 연구가 전제해 온 여러 설명들과 자연스럽게 충돌한다.
초서에 대한 논쟁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지만, 대체로 개별 현상에 머물렀고 문자사가 작동해 온 구조 자체를 충분히 묻지 못했다. 초서를 예서의 파생으로 볼 것인가, 초서의 시작을 어디에 둘 것인가, 장초와 금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서로 얽히며 혼란된 논쟁 지형을 형성해 왔다.
본고는 이러한 혼란이 자료의 부족이 아니라, 문자사 구조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초서와 예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분리된 서체가 아니라, 일정한 구조적 단계를 거쳐 형성된 문자 체계였다. 이를 위해 문자사의 전개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 문자사 4단계 기준 >
Ⅰ단계: 예서·초서 동일 문자 병존 (진간 ~ 전한 초)
Ⅱ단계: 예서·초서 분리, 서체 독립 (전한 말 ~ 후한 초)
Ⅲ단계: 예서·초서 양대 서체 확립 (한말)
Ⅳ단계: 예서·초서 병열 구조 계열 (남북조 ~ 당 이후)
Ⅰ단계에서는 진간에서 전한 초에 이르기까지 예서와 초서가 동일한 문자로 병존한다.
Ⅱ단계에 이르면 전한 말에서 후한 초 사이에 예서와 초서가 분리되며 각각 독립된 서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Ⅲ단계인 한말에는 두 서체가 양대 문자 체계로 확립되고, Ⅳ단계에서는 남북조 이후 당대에 이르러 혼합이 아니라 병열 구조의 계열로 정착한다.
본고의 「초서 원리와 12논쟁」은 이 네 단계의 구조를 기준으로 기존 논쟁들을 재검토한다. 각 논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단계의 문자 현상을 다른 단계의 기준으로 해석했는가의 문제로 재배치될 것이다. 이 서문은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이후의 논의는 초서를 둘러싼 오래된 질문들을 새로운 구조 속에서 다시 묻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논쟁 1 — 강희자전이 소전 계통을 표준으로 삼은 문제
(Ⅰ–Ⅳ단계 전면 혼동)
강희자전은 소전을 기준으로 문자를 등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설문해자 이후 이어진 전통적 문자 기준이며,
오래된 문자일수록 권위가 높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선택이다.
이 전제에 따르면 문자 기준은 진나라의 소전에서 출발하며,
후대 문자는 그 계통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입장이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의하면 이와 다른 주장이다
소전은 진(秦) 이후 실제 기록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진간 이후 현장에서 쓰인 문자는 예서·초서·해서·행서 계열이었고,
소전은 이미 실사용 문자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즉, 진 이후 약 2천 년간 문헌과 문서에서 실제로 사용된 문자는
일관되게 해서 계열이었다.
그렇다면 강희자전이 문자를 등재할 때 기준으로 삼았어야 할 것은
그 시대까지 실제로 쓰이던 문자 계열 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강희자전은 한나라 이후의 실용 문자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진나라 시대의 소전을 문자 기준으로 채택했다.
이로써 강희자전은 문자의 실제 역사를 정리한 사전이 아니라,
문자에 대한 권위 체계를 설정한 사전이 되었다.
이 선택이 이후 문자 구조 인식의 혼란을 낳았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자 이해의 출발점에 문제를 남기게 되었다.

논쟁 2 — 예서·초서·해서 계통의 실제 흐름이 배제된 문제
(오독 발생 단계: Ⅱ–Ⅳ단계)
문자사는 흔히 두 축이 병행해 전개되었다고 설명된다.
곧, 갑골–금문–대전–소전이 하나의 계열이고,
예서–해서–행서–초서가 또 하나의 계열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소전 계열은 이후 문자사에서도 하나의 문자 계열로 존속하며,
예서·초서·해서 계열과 병행하여 전개된 것으로 이해된다.
문자사는 두 계열이 나란히 유지된 구조가 된다는 것이 기존의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문자 자료를 보면 상황은 다르다.
소전은 한대 이후 오체(五體) 체계 속에서 서체의 하나로 정리된 문자일 뿐,
문헌과 문서를 구성하는 실사용 문자 계열로 기능하지 않았다.
진간 이후 한나라를 지나 당.송.원.명.청에 이르기 까지
문헌과 문서를 구성한 문자는 예서·초서·해서 계열이며,
소전이 이들과 병행하는 계열구조로 유지돠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축 병행이라는 설명을 유지할 경우,
실제 문자 사용을 이끈 예서·초서·해서 계열과
실사용에서 벗어난 소전 계열이 문자사 서술에서 동일한 계열로 취급된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청대 강희자전에서는 소전 계열을 채택하였고
그 결과 기존 문자사에서는
진간–예서–초서–해서로 이어지는 실제 문자 변화의 흐름이 배제되었다.

논쟁 3 — 소전 이후, 진간에서 문자는 더 이상 상형문자가 아니다.
(오독 발생 단계: Ⅰ단계)
기존 통설에서는 소전 이후 문자가 갑자기 예서로 바뀐 것처럼 설명되곤 한다.
이 설명에서는 쓰기에 불편한 문자가 점차 쓰기에 편하게된 결과로 설명한다.
이 전제에 따르면 소전과 예서 사이의 변화는 상형 문자가 점차 단순화된
연속 과정이며, 기호로 전환되는 구조적 차이보다는 표현 방식의 변화로 해석된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의하면 진간에 이르러 문자는 상형을 그리는 체계에서 벗어나
기호로 작동하는 체계로 전환된다. 이는 문자가 소전의 상형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호 중심의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기호화 원리는 예서–초서–해서–행서로 이어지는 이후 문자 변화의
실제 흐름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기존 통설은 소전의 상형 구조가
진간의 기호 구조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변화 과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초서원리에서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월간추사1-4호)
따라서 소전→진간의 변화는 문자사의 단절이 아니라
문자 구조의 전환(轉換)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논쟁 4 — 초서는 진나라 시기, 진간에서 시작된다
(오독 발생 단계: Ⅰ ↔ Ⅱ단계 혼동)
초서는 흔히 “예서를 빠르게 쓰기 위해 축약한 서체”로, 예서에서 파생된
속필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 전제에 따르면 예서가 먼저 성립하고,
초서는 그 예서를 간략하게 쓴 결과로 뒤늦게 발생한 서체가 된다.
기존 통설에서 문자 변화는 “예서 → 초서”라는 일방적 발전 관계로 설정된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따르면 이는 초서의 시작시기 특정에 관한 문제로
기존 통설과 현격하게 다르다.
초서는 예서가 성립한 이후에 등장한 서체가 아니다.
그 시작은 진나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진간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초서 예서는 진예라는 하나의 문자 안에서 출발하였다.
진간(출토 문자, 진예)시기에는 예서와 초서가
오늘날과 같은 두 개의 독립된 서체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예서(隷書:진예)는 문서 실무에 사용되는 문자라는 의미였고,
초서(草書)는 문자 명칭이 아니라 초솔(草率)하게 쓴다는
쓰기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즉, “예서”와 “초서”는
문자 체계의 차이가 아니라 사용 목적과 쓰기 방식의 차이를 가리킨 말이었다.
따라서 가장 초기 단계인 진예 시기에는 예서와 초서가
서체적으로 분리된 두 문자가 아니라, 동일한 문자 구조에 붙여진 두 개의 용어였다.
초서와 예서는 처음부터 분리된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문자 구조 안에서
병존적으로 출발했다.
**병존 출발이 밝혀주는 세 가지 점
이 병존 구조를 전제로 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가 함께 확인된다.
첫째, 예서와 초서의 한몸 병존 구조는 진간에서 시작되어 전한 시기까지 지속된다.
둘째, 초서의 시작 시점은 진간 시기로 분명하게 특정될 수 있다.
셋째, 이 시기를 통해 소전에서 예서로 이행하는 구체적인 과정 또한 확인된다.

논쟁 5 — 상형에서 기호로의 전환에는 질서가 있다
(오독 발생 단계: Ⅰ단계)
기존 통설 에서는 소전에서 진간으로 이동은 흔히 자유로운 생략이나
우연한 변형의 결과로 설명되어 왔다.
이 전제에 따르면 소전에서 진간과 이어지는 예서로 변화는
문자의 형태를 간략하게 표현한 결과로 간주된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따르면 소전에서 진간으로 이동은 문자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상형문자에서 기호문자로 전환으로 본다. 이러한 전환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곧 초서의 시작을 의미한다.
특히 진간을 중심으로 한 초기 문자 자료를 보면,
이 변화에는 분명한 조건과 반복되는 패턴이 존재한다.
초서원리에서 밝힌 소전에서 진간으로 전환되는 구체적 과정이다
① 구조적 배경
– 상형적 의미를 버리고 기호화를 지향한 문자 구조
– 새로운 필법, 특히 90도 긋기 필법의 등장
② 구조적 패턴
– 기호 간의 새로운 연결
– 기호 일부의 삭제
– 이 과정을 반복하며 문자 구조를 재편성
이러한 구조적 원리는 초서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이 원리는 소전 이후 진간을 거쳐 예서와 초서로 전개되는
문자 변화 전반을 지배하며, 나아가 남북조 문자와 해서·행서의
일반 자형 원리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이 점에서 설문해자의 육서원리는 소전 이전의 문자 원리를 설명하는 체계라면,
초서원리는 진간 이후 문자 변화 전체를 이해하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육서원리는 상형문자에 대한 설명체계인 반면 기호화된 문자에서는
설명될 수 없게 되었다. 기호문자는 별도의 질서로 이해되어야 한다.

논쟁 6 — 남북조 문자는 예서 단독기반이 아니라 예서·초서 병렬 기반이다.
(오독 발생 단계: Ⅳ단계)
남북조 문자는 대체로 “예서를 기반으로 형성된 문자”로 이해되어 왔다.
이 설명에서는 남북조 시기의 문자 형태를 예서 계열의 변형이나
정리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 전제에 따르면 예서는 문자 구조의 중심에 놓이고,
초서는 문자 형성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구조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결과 기존 문자사 서술에서는 남북조 문자와 초서 사이의
구조적 관계 여부 자체가 인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존 통설이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의하면 실제는 이와 다르다.
한말에 이르러 예서와 초서는 비로소 두 개의 분명한 서체로 정립되었다.
이 시점부터 문자 구조는 예서 계열과 초서 계열이라는
두 개의 흐름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남북조 시기의 문자는
새로운 정서(正書)/정체(正體)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형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예서적 구조와 초서적 구조가 병렬적으로 얽힌 형태로 출현한다.
남북조 문자 자료를 보면 예서 계열의 구조를 따른 문자뿐 아니라,
초서 계열의 구조를 따른 문자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는 남북조 문자의 형태적 다양성이 무질서나 혼란의 결과가 아니라,
예서적 구조와 초서적 구조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기존 통설은 남북조 문자를 예서 중심으로만 설명함으로써,
이 병렬 구조가 문자 형성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포착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남북조 문자의 다양한 자형은 구조적 병존의 결과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현상으로 남은 문제점이 있다.
초서원리의 작동이라는 문자사의 한 축이 채워지지 못한 원인이다

논쟁 7 — 이체자는 ‘형태 차이’가 아니라 ‘구조 차이’로 판단해야 한다.
(오독 발생 단계: Ⅳ단계)
기존 문자학에서는 문자의 외형이 조금만 달라도
이를 이체자(異體字)로 간주해 왔다.
형태가 다르면 다른 글자라는 판단이 문자 분류의 기본 기준으로 작동해 왔다.
이 전제에 따르면 문자는 형태(形態)를 중심으로 인식되며,
문자 내부의 구조(構造)는 판단 기준으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그 결과 문자 간의 관계는 외형의 유사성이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기존 입장이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의하면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형태가 다르더라도 구조가 동일하면 동일한 문자 계열(同系)이며,
구조가 다를 때에만 비로소 다른 문자로 구분된다.
즉, 이체자의 판단 기준은 “형태가 다른가”가 아니라
“구조가 동일한가, 다른가”이다.
이 기준은 역사적 문자의 실제 생산과 사용 과정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실제 문자 자료에서는 형태의 변형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그 변화가 곧 문자 계열의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 중심의 접근은 형태의 차이를 포괄하면서도
문자의 계열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럼에도 형태 중심의 접근은 남북조–한나라–진나라 문자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문자 계열을 불필요하게 분절시키고, 구조적 관계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동일한 구조를 지닌 문자들이 서로 다른 문자로 분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체자의 동일 구조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초서원리는 유효한 해석 도구로 작동한다.
초서의 생략과 연결 방식을 기준으로 구조를 복원하면,
형태가 다른 문자들 사이에서도 구조적 동일성과 계열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이체자 문제는 형태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판단의 문제로 전환된다.

논쟁 8 — 남북조 得자의 중인변/삼수변 현상은 초서원리의 역복원 결과이다.
(오독 발생 단계: Ⅳ단계)
남북조 문자에서 得의 좌변이 중인변(彳)으로 쓰이기도 하고
삼수변(氵)으로 쓰이기도 하는 현상은 대체로 “변칙”
또는 “혼란”으로 설명되어 왔다.
이 전제에 따르면 중인변과 삼수변은 서로 다른 부수이자 서로 다른 구조이며,
하나의 문자 안에서 병행될 수 없는 요소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병행 현상은 설명되지 않은 예외로 처리된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따르면 이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초서에서 삼수변(氵)은 세로선 하나로 생략되며,
중인변(彳) 역시 세로선 하나로 생략된다.
즉, 초서 내부에서는 氵와 彳이 동일한 형태의 기호로 수렴한다.
두 부수는 초서 단계에서 구조적으로 같은 기호가 된다.
구조 관계를 좀더 살펴볼 수 있다.
남북조의 정서 중에는 초서를 기반으로 다시 문자 구조를 재구성한 자형이 많다
이는 초서에서 하나의 세로선으로 생략된 기호를 정서화 과정에서
다시 복원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得자의 좌변이 중인변(彳)으로 쓰이거나 삼수변(氵)으로 쓰인 현상은,
초서에서 동일했던 하나의 세로선 기호가 정서화 과정에서
서로 다르게 복원된 결과이다. 즉, 이 현상은 혼란이 아니라
초서 기호를 역복원(Reverse Reconstruction)한 구조적 결과이다.
남북조 문자에서는 彳과 氵이 동일한 초서 기호에서 출발했으며,
다음의 등식이 구조적으로 성립한다.
得 = 淂 , 彳 = 氵
따라서 중인변과 삼수변은 이 사례에 한해 예외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동일한 기호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 결론은 형태를 기준으로
문자를 구분하는 기존 통설의 전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충돌 지점에서 초서원리는 이 현상을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해석의 근거로 작동한다.

논쟁 9 — 唐 해서의 성립 — 혼란 수습이 아니라 기준의 선택
(오독 발생 단계: Ⅳ단계)
唐 해서의 성립은 남북조 시기의 문자적 혼란을 정리한 결과라기보다,
병존하던 문자 구조 가운데 하나를 기준으로 선택한 사건이었다.
唐대의 해서 표준화는 남북조 시기의 문자 혼란을 정리한 결과로 설명되어 왔다.
이 설명에서는 남북조 문자를 미정형·과도기적 상태로 보고,
唐대에서 비로소 질서가 확립된 것으로 이해한다.
남북조 문자의 다양성은 정리되기 이전의 불안정한 상태이며,
唐대의 표준화는 그 혼란을 일괄적으로 정돈한 사건으로 간주된다.는 것이 기존 통설이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따르면 당의 표준화 과정은 다르게 해석된다.
남북조 문자는 혼란이 아니라 예서 계열과 초서 계열이 병존하며 작동한 실험기 였다.
唐대의 표준화는 이 다양한 구조를 단순히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이미 병존하고 있던 두 계열 가운데 문자 정체(正體)의 기준을 선택·정립한 과정이었다.
唐에서는 예서 계열 문자를 해서(楷書)로 정형화하였고,
초서 계열 문자를 행서(行書)로 흡수하였다.
따라서 唐해서는 예서 계열의 정형이며, 唐행서는 초서 계열의 실용형이다.
이 과정은 ‘혼란 →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갈래 → 선택·정립’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唐대의 표준화는 문자의 정체를 확립한 사건이며, 남북조 시기의 문자 실험은
唐해서·행서가 성립하는 기원적 기반을 형성한다.
앞선 사례에서 보았듯이 남북조 문자에서 중인변(彳)을 사용한 得은 예서 계열이고,
삼수변(氵)을 사용한 淂은 초서 계열이다.
唐대 표준화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귀결된다.
彳 구조의 得 → 해서(정형)로 편입
氵 구조의 淂 → 행서(실용형)로 흡수
즉, 得/淂의 분기 자체가 唐대의 “예서 정형화 / 초서 실용화”라는
표준화 기준을 실물 차원에서 보여준다.

논쟁 10 — 문자 변화는 필법의 변화와 결합해서 성립한다.
(오독 발생 단계: 전 단계 공통)
기존 문자사에서는 문자의 변천을 주로 자형의 변화나 서체의 분화 과정으로
설명해 왔다. 필법은 표현상의 요소로 취급되었고,
문자 구조를 형성하는 결정 요인으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 전제에 따르면 문자는 먼저 형성되고, 필법은 그 문자를 구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자 구조와 필법의 변화는 분리된 층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초서원리에 따르면,
문자 변천은 필법의 변화와 결합하여 성립하였다
소전 이전 문자의 필법은 기본적으로 순방향 긋기였다.
진간에 이르러 새로운 필법, 즉 90도 긋기가 등장하고,
이 필법이 예서와 초서를 성립시키는 기초가 된다.
따라서 진예의 구조 변화는 임의적인 변형이 아니라
새로운 필법의 출현에 따른 구조적 전환이다.
이후 唐대의 해서(楷書)는 세 번째 필법인 45도 방향 긋기에 의해 완성된다.
이 점에서 해서의 정형은 ‘글자의 완성’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 필법이 먼저 완성된 결과이다.
즉 필법은 순방향긋기 ,90도 방향 긋기, 45도 방향 긋기 세단계로 변천하였고
문자변화는 소전, 진예, 해서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종합하면 문자의 변천은 기호의 변천 이전에, 무엇보다 먼저 필법의
변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필법의 단계적 변화가 문자 단계의 구분,
즉 소전 → 진예 → 해서라는 문자사적 전환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기존 문자사 서술은 필법을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함으로써,
문자 생성·변형·정형을 추동한 실제 동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문자 변화는 형식적 변동으로만 파악되고,
그 구조적 원인은 가려져 왔다.

논쟁 11 — 초서원리는 검증 가능한 구조이다.
(오독 발생 단계: 전 단계 공통)
초서는 흔히 특정 서체의 기법이나 표현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관점에서는 초서를 속필이나 개성적 서체의 범주에서 다루며,
문자 구조를 설명하는 원리로는 취급하지 않는다.
이 전제에 따르면 초서는 문자 변천의 결과물일 뿐,
그 변천을 설명하는 구조적 기준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초서에 나타나는 생략·연결·단축은 개별적 현상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이 기존 입장이다.
그러나 초서원리는 단순한 주장이나 관점이 아니라 문자 변천을 설명하는
구조적 원리이다. 이 원리는 특정 시대나 특정 서체에 한정되지 않으며,
진간 이후 전개된 문자 변화 전반에 일관되게 적용된다.
이 점에서 초서는 ‘서체 기법’이 아니라,
문자 구조가 생성·단축·연결되는 작동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층위에 놓인다.
초서원리가 실제 문자 자료에서 특히 분명하게 검증되는 시기는
남북조 문자이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초서를 정서(正書)로 되돌리는
정서화 작업이 실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서의 기호는 정서의 기호로 다시 복원되었으며,
그 복원 방식은 진간 이후 초서에서 진행되었던
생략·단축·연결 과정을 생략 이전의 구조로 되돌리는 역작업이었다.
이러한 역복원 과정은 진간 이후 문자 변화를 기준으로 정리한
필자의 초서원리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초서원리는 추론이나 가설이 아니라, 남북조 문자라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구조로 작동한다.
따라서 초서원리는 단순한 해석 관점이 아니라,
문자 변천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역사적 자료를 통해 검증 가능한
문자 구조의 이론적 틀로 이해될 수 있다.

논쟁 12 — 강희자전이 포착하지 못한 문자사의 공백
(오독 발생 단계: Ⅰ–Ⅱ–Ⅳ단계 누락)
강희자전은 동아시아 문자 표준을 정리한 대표적 사전이다.
그러나 앞선 논쟁 1~11에서 확인했듯이, 강희자전 체계는
문자사의 전 과정을 포괄하지 못하며 특히 진간 이후 전개된 문자 변화의
핵심 구간을 구조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문자사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백이 남게 된다.
① 문자 변천의 출발점 공백 — 진간 이후 계열의 부재
강희자전은 문자 기준을 소전에 두고 문자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실제 문자 변천은 소전에서 단절되고, 진간 이후 예서를 중심으로
다시 출발한다. 이로 인해 진간–예서–해서로 이어지는 실제 문자 사용의
중심 계열은 자전 체계 안에서 출발점부터 비어 있게 되었다.
문자사는 소전에서 곧바로 해서로 연결된 것처럼 서술되었고,
그 사이에서 진행된 구조적 전환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② 계열 구조의 공백 — 예서·초서 병존 구조의 소실
남북조 시기에는 예서 계열과 초서 계열이 병존하는 구조가 실제
문자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得/淂, 彳/氵 등의 사례는 이 이중 구조가
실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강희자전 체계는
문자를 하나의 표준 계열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서 계열의 구조는 문자사 서술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조 문자의 형태적 다양성은 구조적 병존이 아니라
‘혼란’으로 인식되었다.
③ 구조 인식의 공백 — 형태 중심 분류의 한계
강희자전은 문자를 형태(자형) 중심으로 분류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형태 차이는 곧 이체자의 기준이 되었고, 문자 내부의 구조 변화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문자 변천은 초서원리가 보여주듯
기호의 생략·단축·연결·역복원이라는 구조적 작동에 의해 진행된다.
이 구조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는
문자의 계열 관계와 변천 원리를 설명할 수 없다.
[복원의 관점] — 초서원리가 채우는 문자사의 빈곳
초서원리는 강희자전이 포착하지 못한 이 세 가지 문자사적 공백을
구조적으로 연결한다. 이를 통해 잃어버린 진간–예서–해서 계열의
실제 흐름을 복원할 수 있으며, 소전 기준으로 편찬된 자전 체계에서 발생할수 있는
혼란스러운 문자 정보 역시 구조적으로 보정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초서원리〉는 기존 체계가 미처 담지 못한 문자사의 핵심 구간을
보완하는 해석 틀로 기능한다.

2026. 01 | 월간추사 제 5호 : 至에 담겨진 초서 코드 4 영문초록(Abstract)
문자 변화의 5시기와 至 문자를 통해 본 초서의 형성
통일 진 이후 문자는 빠르게 변했다. 이 변화는 단선적인 발전이 아니라, 시기마다 서로 다른 성격을 띠며 누적되었다. 《월간추사》는 이 흐름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1시기인 통일 진은 문자 생략의 기본 원리가 처음 형성된 시기이며, 제2시기 전한 초기에는 그 변화가 이어지며 정리되기 시작한다. 제3시기인 전·후한 약 150년 동안에는 초서와 예서가 병행되며 분화가 진행되고, 제4시기 후한 말에 이르러 두 서체는 각각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제5시기 한말 이후에는 정착된 문자 체계가 계승·확산되며 새로운 표준이 형성된다.
至는 이 다섯 시기 전체를 통과한 문자다. 그 변화 과정에는 초서 형성의 핵심인 생략의 3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제1시기에는 새로운 필법이 등장하고 상형의 흔적이 해체되며 생략의 기본 패턴이 만들어진다. 제2·3시기에 이르면 점은 가로선으로 이어지고, 口는 꺾쇠로 줄어들며, 하부 요소는 서로 결합된다. 제4시기에는 口의 생략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초서로, 다른 한쪽은 예서로 이어진다. 이후 손과정과 왕희지에 이르러 여러 생략 방식이 병행·중첩되며 오늘날 익숙한 초서의 형태가 완성된다. 이러한 至의 변화는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초서의 구조적 기반은 이미 통일 진 시기에 마련되었으며, 문자 변화는 감각이 아니라 시기별로 추적 가능한 원리를 따른다는 점이다. 또한 특정 지점에서 문자는 초서와 예서로 분기하고, 초서가 완성된 이후에도 생략의 패턴은 멈추지 않고 반복·진화한다. 즉, 초서는 빠르게 쓴 글씨가 아니라, 문자 변화가 오랫동안 축적되며 형성된 하나의 필연적인 문자 체계다.
The Five Stages of Script Transformation and the Formation of Cursive Script Seen through the Character Zhi (至)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Qin dynasty, written characters underwent rapid transformation. This change did not follow a single linear path but accumulated over time, taking on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each period. Monthly Chusa conjures this 흐름 by dividing the history of script transformation into five stages. The first stage, the unified Qin, marks the moment when the basic principles of abbreviation were first formed. In the second stage, the early Western Han, these changes continued and began to be systematized. During the third stage, spanning roughly 150 years from the late Western Han to the early Eastern Han, cursive script and clerical script were used in parallel and gradually diverged. By the fourth stage, the late Eastern Han, both scripts had settled into distinct and independent systems. In the fifth stage, after the fall of the Han and through the Wei–Jin period to the Tang dynasty, these established script systems were inherited, expanded, and reorganized into new standards.
The character Zhi (至) passes through all five stages. Its transformation reveals the consistent operation of the three fundamental patterns of abbreviation that lie at the core of cursive script. In the first stage, new brush techniques emerge, pictographic elements are dismantled, and the basic patterns of abbreviation take shape. In the second and third stages, dots are joined into horizontal strokes, the component kou (口) is reduced to an angled form, and the remaining elements are consolidated. In the fourth stage, the abbreviation of kou branches in two directions: one leading toward cursive script, the other toward clerical script. In later periods, through the works of Sun Guoting and Wang Xizhi, multiple modes of abbreviation coexist and overlap, culminating in the generalized forms of cursive script familiar today. The evolution of Zhi makes several points clear: the structural foundation of cursive script was already laid during the Qin dynasty; the transformation of characters follows traceable principles rather than mere instinct or speed; and at a certain point, written forms diverged into cursive and clerical traditions. Even after cursive script reached maturity, the patterns of abbreviation did not cease but continued to repeat and evolve. Cursive script, therefore, is not simply fast writing—it is a script system formed through the long-term accumulation of structural change in written characters.

항백의 초서 연구 이력
(Research History on Cursive Script)
항백의 초서 연구는 전통적 초서 학습을 출발점으로 하여, 문자 변화와 필법 변화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해명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 연구는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강독·작업 노트·논문 발표·영상 공개·연재라는 다양한 형식을 통해 단계적으로 축적·검증되었다.
2005–2006
전통 방식에 의한 초서 강독 과정 수료.
고전 초서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 학습을 통해 초서의 기본 형식과 자형을 익힘.
2007–2008
독자적 초서 연구 시작.
동호인을 대상으로 초서 원리 강독을 진행하며, 초서를 속필이나 개성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원리의 문제로 재검토하기 시작함.
2011~2012
월간지 *『선으로 가는 길』*에 초서 원리 관련 글 2년간 연재.
이 시기에 초서 형성 과정과 생략 원리를 정리한 1차 작업 노트를 작성하고,
초서 원리를 구성하는 25개 항목의 목록을 처음으로 정리함.
2016
초서 연구 내용을 보완·확장한 2차 작업 노트 작성.
『초서와 문자 생략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초서의 생략을 문자 변화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도서형태로 편철함.
2017
초서 원리 관련 연구 논문 발표.
「추사서법 속 문자 읽기 ― 추사 작품 속 초서 ‘花’의 생략 원리」
(≪문헌과 해석≫ 78호)
「대표 기호 ‘艹’와 초서 원리」
(≪문헌과 해석≫ 79호)
이를 통해 초서 생략 원리를 실제 작품 분석을 통해 학술적으로 검증함.
2019
문자 변화와 필법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세 가지 필법 변천’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여 공개.
해당 성과는 『항백 묵서집 ― 歸』를 통해 발표됨.
2022–2023
「초서에 원리가 있다」 초서 원리 기본7종을 정리한 영상 제작 및 공개.
(유튜브: http://www.youtube.com/@park_hangbak)
초서 원리를 대중적 언어로 설명하고, 연구의 핵심 개념을 단계적으로 소개함.
2025–
「초서에 원리가 있다」 연재 본격화.
개인 웹진 *『월간추사』*를 발행하며, 초서 원리와 문자 변화 연구를 체계적으로 연재 중.
본 호에 제시된 ‘12논쟁’은 위와 같은 장기간의 연구 과정에서 축적된 작업 노트와 발표 성과를 바탕으로 도출된 문제 설정이며, 이후 연재를 통해 순차적으로 해설·검증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2012년 이후 현재까지 SNS(페이스북 등)를 통해 연구 과정과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공유해 왔으며, 강의와 비공식 발표를 통해 이론을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수정해 왔다. 본 호에 수록된 논쟁들은 이러한 장기간의 연구와 작업 노트에서 도출된 문제 설정의 일부이다.

醬(장)
(96×67 한지, 송연먹 2025)
醬은 《설문》에 醢(육장 해)라 한다. 육고기(肉=月)와 항아리(酉)의 뜻이 결합하여 ‘육고기를 항아리에 담근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은 고문(古文)이고
은 주문(籀文)이다.
전문(箋文)으로는 본문글자(醬에 寸을 생략한 형태)와 같이 쓰는데 지금은 醬으로 쓴다. 《강희자전》에도 醬은 醢(해)인데 육장(肉醬) 또는 시장(豉醬: 매주 장)이란 뜻이라 한다. 《중문대사전》에도 醢(해)라 하며, 음식물을 으깨어서 진흙처럼 되니 매장(梅醬)이나 하장(蝦醬)같은 류라 하였다. 본글자는 (장:寸을 생략한 자형)이다. 요즘 사람들은 콩 보리가 누렇게 되면 소금과 물을 넣어서 장(醬)을 만든다.
때는 을사(2025)년 세모(歲暮)에 항백 박덕준 쓰고 아울러 이 해설을 붙입니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이상희선생께

회재 回齋 House of Cycles (Hoegjae)
(56×66 한지 송연먹, 2025)
물속에 비친 달과 그 안에 어른거리는 무늬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갑골문자 ‘回’와 ‘齋’로 읽힐 수도 있다.
상형과 반영, 기호와 자연이 겹쳐지는 순간 문자는 더 이상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떠오르는 이미지가 된다.

서보(書譜) 읽기
연재를 하며..
서보(書譜)는 당나라 손과정이 남긴 서법 이론서입니다.
3,700여 자로 쓰였으며 전편이 초서로 기록되어 왕희지 시기의 초서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시적인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서법의 개념입니다.
한말·위진 이후 당대까지의 짧은 시기 기록이지만, 초기 서법 이론이기 때문에 이후 조맹부의 서법이나 조선의 주류 서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오히려 추사 서법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서법 이론의 깊은 의미와 깨달음은 독자에게 맡기고 이번 연재에서는 자구(字句)를 하나씩 짚어 읽어 가며 20여 년 전의 독서를 다시 정리 합니다. 필자의 세필로 다시 쓰여진 서보 작품으로 월간추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예가 항백 박덕준

11. 又云 子敬之不及逸少 猶逸少之不及 鍾張
意者 以爲評得其綱紀而 未詳其 始卒也
또 (평자가)말하기를 자경(왕헌지)이 일소(왕희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마치 일소가 종요와 장지에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고 했다. 그 뜻은 그 대강의 실마리를 얻어서 평을 했는데 그 전체의 뜻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12. 且元常專工於隸書 百英尤精於草體
또 원상(종요)은 예서를 잘하고 백영(장지)는 초서에 더욱 정밀하였는데

13. 彼之二美而 逸少兼之
擬草則餘眞 比眞則長草
그 두가지 좋은 점에서 일소는 그 둘을 겸하였다. (장지의) 초서와 비교하면 (초서와는 비슷하지만) 진서가 (장지보다) 나은 점이고 (종요의) 진서와 비교하면 (진서와는 비슷하지만) 초서가 (종요보다) 낫다.

14. 雖專工小劣而 博涉多優 摠其終始 匪無乖互
비록 전문 분야로는 (장지와 종요에 비하면) 약간 열등하지만 두루 섭렵한 점에서는 (왕희지가) 훨씬 우월하다. (평자의) 견해를 종함해보면 서로 잘못된 점이 없지 않다.

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6. 01 | 제 5호
저자,발행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편집 디자인 : 월간추사 편집부 / Art Director 김 나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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