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6. 10 제 14호

월간추사 2026. 10 | 제 14호
원고 항백 박덕준 / 편집디자인 김나희
추사어록
濃淡滑澁是在用墨之法
농담활삽은 먹을 사용하는 용묵법에 해당한다.
판단의 기록
대팽고회(大烹高會)에 대한 추사의 두 번째 판단
글자속 필획은 연결부분이 왜 떨어져 있는가
초서원리
항백초서원리 5. 중복은 버린다‘
중복이란 무엇인가. 초서의 생략은 겉으로 보면 필획을 줄이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필획을 만드는 동작을 줄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달의 작품 - 분청편병
서보(書譜)읽기
書譜 — 서법으로 읽는다. 세필로 다시 쓴 서보 47~50번 문장 / 48번 문장 趨吏適時 — 變과 吏의 판독 문제
보충자료
월간추사11호 특집-불이선란도 건 추가
근황 / 활동
항백의 [ 추사 김정희 서론 ] 연구논문이
추사박물관 『학술총서 17』에 수록·발간
영문초록(Abstract)

濃淡滑澁是在用墨之法
농담활삽은 먹을 사용하는 용묵법에 해당한다.
- 서원교필결후
농담(濃淡)은 먹의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고, 활삽(滑澁)은 붓에 담는 먹의 양과 관계된다. 먹이 많으면 필획이 매끄러운 활(滑)의 느낌을, 적으면 까칠한 삽(澁)의 느낌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먹의 양도 서법의 표현 방법이라는 점이다. 붓에 먹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먹물을 담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필획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판단하여 먹을 더 담기도 하고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쓰기도 한다.
『서보』에서 “무거울 때는 먹구름이 무너질 듯하고, 가벼울 때는 매미 날개와 같다”고 한 것도 이러한 용묵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먹이 충만하면 무거운 느낌을 만들고, 먹이 거의 빠진 붓의 갈필은 가볍고 까칠한 느낌을 만든다.
용묵은 먹을 사용하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먹의 농도와 양을 선택하여 필획의 느낌을 만드는, 서법 표현을 위한 판단의 영역이다.

판단의 기록
판단의 기록 (8)
필획은 왜 떨어져 있는가
― 작품 「대팽고회(大烹高會)」에 대한 추사의 두 번째 판단
추사의 이 예서 대련을 처음 보면 조금 무뚝뚝한 느낌을 받는다. 필획은 대체로 납작하고 네모나며, 굵기나 형태의 변화도 크지 않다. 예서 특유의 각진 필획이 반복되면서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인상을 준다. 왜 이러한 무뚝뚝한 필획을 썼을까? 이는 이 작품에 대한 추사의 첫 번째 판단으로 지난 호(『월간추사』 13호)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아직 하나의 문제가 더 남아 있다. 자세히 보면 서로 연결되어야 할 필획들이 곳곳에서 떨어져 있다. 추사는 왜 필획의 연결 부분을 떨어뜨렸을까. 이 작품에 대한 추사의 두 번째 판단이다. 이번 14호에서는 그 두 번째 판단을 기록하고자 한다.
한 글자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할 필획들이 곳곳에서 떨어져 있다. 한두 곳이 아니다. 작품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왜 이렇게 썼을까. 얼핏 보면 필획의 연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것 같고, 심지어 무성의하게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薑(강)
豆腐(두부)
(豆에서 口의 좌우측 상부 연결부, 腐에서 상부 广부분 좌 삐침과 상부가로획과 연결부분,
그리고 薑에서 田좌우측 연결부분의 처리등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나타남)

추사는 왜 필획의 연결 부분을 이렇게 떨어뜨려 썼을까.
이 문제는 사실 지금까지 크게 지적된 바 없다. 필획이 무뚝뚝하다는 점은 눈에 띄었지만, 필획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작품은 좌우 두 폭이 한 쌍을 이루는 대련이다. 따라서 개별 글자의 형태만 보아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두 폭을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좌우 글자를 비교하면 먼저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글자를 구성하는 획수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한쪽은 획수가 적어 단순한 반면, 다른 한쪽은 획수가 많아 복잡하다.
이러한 두 글자를 같은 조건으로 쓰면 획수가 많은 쪽은 자연스럽게 조밀해지고 기세가 강해진다. 반대로 획수가 적은 쪽은 성글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세가 약해진다. 두 폭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기세의 차이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추사는 획수가 많아 강해지는 쪽의 밀도를 낮추는 방법으로 소밀(疏密)의 관계를 조절하였다. 밀(密)하면 기세가 강해지고 소(疏)하면 기세가 약해진다. 획수가 많은 글자를 성글게 만드는 방법은 결국 두 가지다. 필획 자체를 가늘게 하거나, 획과 획 사이의 공간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추사는 이 작품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할 필획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그 공간을 만들었다. 필획 사이의 틈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소밀관계를 조절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다. 전체 공간이 제한된 조건에서 필획의 연결부에 틈을 만들어 공간을 확보한 방법은 기발하다.
이는 추사의 예서서법에서 특징적으로 구사하는 표현방법이다. 필자는 『추사김정희 서론』에서 ‘연결 부분의 특별한 운용’을 <추사필법의 8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로 기술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획의 연결 부분 처리는 전통적 서법표현에서 매우 중시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전서를 쓰는 순방향(圓筆) 필법은 연결 부분을 곡선으로 둥글게 처리(曲)하고, 예서와 해서를 쓰는 90도·45도 필법(方筆)은 직선으로 각지게 처리(直)한다. 즉 원·방·곡·직 네 가지 요소로 요약된다. 이 네 요소의 운용 방식에 따라 서법표현의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전통적인 공식에 따르면 해서와 예서에서 연결은 같은 방식이다.
‘각진 필법(方筆)은 직선으로 각지게 처리(直)한다.’
그러나 추사는 이 둘을 서로 다르게 처리한다. 해서에서는 공식에 따라 직(直)의 연결을 더욱 강하게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예서에서는 반대로 연결부를 곡(曲)에 가까울 만큼 완만하고 성글게 처리한다. 이는 직(直)의 반복으로 인한 딱딱한 인상을 피하고, 가로획의 강한 기세가 중첩될 때 생기는 과도한 기세(氣勢)를 조절하기 위한 추사의 표현이었다. 즉 소밀(疏密) 관계에서 ‘소(疏)’의 기능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완만하게’란 연결 부분을 직각(直)이 아니라 둥글게(曲) 처리하였다는 뜻이고, ‘성글게’란 연결 부분을 완전히 붙이지 않고 틈을 만들어 공간을 크게 하였다는 뜻이다. 바로 소밀관계의 표현이다.
이러한 방법은 이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추사의 다른 작품에서도 필획의 연결 부분을 특별하게 운용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다.
〈황화주실〉의 實에서 貝 부분의 연결이 그렇고, 爐자 역시 그 한 예이다.
實의 貝 부분에서는 두터운 가로필획이 반복되면서 기세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 특히 實에서는 위쪽 좌하부를 크게 열고, 그 공간을 아래 貝의 좌상부에서 열린 공간과 연결하였다. 제한된 글자 내부에서 작은 틈을 각각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공간을 하나로 결합하여 더 큰 소(疏)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爐 역시 획수가 많은 데다 필획까지 두터워 그대로 쓰면 글자 내부가 쉽게 조밀해진다. 추사는 연결 부분을 떨어뜨려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획이 지나치게 밀집하면서 강해지는 기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소(疏)의 운용이다.
추사 작 <황화주실>의 實 추사 작<일로향각>의 爐

이제 처음의 대련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에서는 연결 부분을 처리하는 두 가지 방법, 즉 ‘둥글게’와 ‘성글게’ 가운데 ‘성글게’ 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부드러움보다는 소밀관계에 집중한 것이다. 더구나 그 목적은 한 글자 내부의 변화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좌우 두 폭의 기세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필자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추사는 이 작품에서 필획 하나하나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시키지 않았다. 납작하고 네모난 형태, 비슷한 굵기와 기세를 가진 필획을 작품 전체에 반복하여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필획 자체의 조건을 가능한 한 동일하게 설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운(韻)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필획과 필획 사이의 공간이다.
필획 자체의 형태와 기세는 가능한 한 같은 조건으로 두고, 필획과 필획 사이의 거리와 공간을 달리함으로써 변화를 만들었다. 연결 부분을 붙이지 않고 떨어뜨린 것도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점은 이 작품의 후대 모사본과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모사자는 눈앞에 있는 글자의 형태와 필획을 따라 썼지만, 원작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할 필획이 곳곳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의도적으로 벌려 놓은 연결 부분까지 모두 붙여 썼다. 추사서법이 필획의 형태뿐만 아니라 공간을 함께 운용한다는 점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위작으로 보거나 추사의 작품 가운데서도 격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무성의하게 보이는 필획의 연결 부분과 그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에서 추사의 독보적인 서법적 판단을 본다.
필획의 형태와 기세 등 여러 조건을 가능한 한 동일하게 설정한 뒤, 필획 사이의 거리와 공간만으로 변화를 만들고 작품의 운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도 운은 실현될 수 있는가. 추사의 끝없는 실험이다.
공간과 기세를 운용하여 운을 표현하는 것은 추사서법 표현의 중심 원리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 원리가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필획 자체의 화려한 변화가 아니라, 서로 비슷한 필획 사이의 미세한 거리와 공간의 차이로 기세를 조절하고 작품 전체의 운을 만들어낸다.
겉으로 보이는 필획의 형태는 모사할 수 있다. 그러나 왜 그 필획을 그곳에서 끊었는지, 왜 그만큼의 거리를 두었는지, 그 판단까지 모사하기는 어렵다.
나는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이상하다고 여겼던 바로 그 공간에서 오히려 추사를 본다.
끝.

초서에 원리가 있다
항백 [초서원리 5] - 중복은 버린다
항백 초서 기본원리 <1-7> 중 5번이다.
중복이란 무엇인가
초서의 생략은 겉으로 보면 필획을 줄이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필획을 만드는 동작을 줄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중복 역시 형태의 중복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기호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같은 필획 동작이 연속해서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경우 같은 동작을 두 번 반복하지 않고 한 번의 동작으로 공유한다.
초서의 생략은 필획을 줄인 결과이고, 그 근원에서는 동작을 줄이는 과정이 있다
1. 초두 범주
중복은 기호와 기호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중복되는 기호는 단순히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획을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⓵ 草에서 중복
草의 초서
草는 세 기호로 구성된다.
艹 + 日 + 十
각 기호는 먼저 각각의 원리에 따라 변형된다.
초두(艹)는 1번 형태로 처리되는 경우에 한한다.
日은 口의 원리에 따라 ㄱ형, 즉 좌측을 버리는 형태로 변한다.
여기까지는 각 기호의 독립적인 변형이다.
그런데 변형된 두 기호를 결합하면 초두의 가로획과 ㄱ형으로 변한 日의 가로획을 긋는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중복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두 번의 가로획 긋기 동작을 각각 하지 않고, 한 번의 동작으로 두 기호의 가로획을 공유한다.
이것이 중복 처리의 실제 모습이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중복으로 버리기는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난다.
⓶ 萬에서 중복
<萬초서 a, b>
萬의 초서는 a와 b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한다.
萬의 상부는 초두 기호에 속하고, 그 아래 田은 口와 같은 기호그룹에 속하여 口의 생략방식을 따른다. 이에 따라 田은 다음과 같이 a·b 두 가지 형태로 생략된다.
a: 우측버리기(ㄴ 형), b: 좌측 버리기(ㄱ 형)

이제 초두와 생략된 田의 기호를 결합해 보자.
a의 경우 초두의 가로획과 ㄴ형으로 변한 田에서는 같은 동작이 연속해서 반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복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b의 경우 초두의 가로획과 ㄱ형으로 변한 田의 가로획을 긋는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중복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두 번의 가로획 긋기 동작을 각각 하지 않고, 한 번의 동작으로 두 기호의 가로획을 공유한다.
중복 버리기는 앞에서 살펴본 草와 같은 방식이다.
(생략 진행중에 있는 출토자료 한간 萬)
草와 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중복은 기호가 결합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발생한다. 각각의 기호가 먼저 자신의 원리에 따라 변형되고, 이들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같은 필획 동작이 연속해서 반복될 때 중복이 발생한다. 이때 두 번의 동작을 각각 하지 않고, 한 번의 동작으로 두 기호의 획을 공유한다.
따라서 ‘중복은 버린다’는 독립적으로 먼저 작동하는 원리가 아니라, 각각의 기호가 변형된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작동하는 원리이다.
물론 중복된 상태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초서 진행 과정의 어느 상태라도 가능하다는 기본 원리는 변함이 없다. 아래 萬초서 좌측은 가로획 중복이 생략되기 전을 사용한 사례를 보여준다.
(萬 초서의 두가지 형태)

월간추사 제 14호 이달의 작품

분청편병
hangbak 33 × 48 한지에 먹, 2026
편병의 내부는
기존 편병의 무늬를 응용하여 기세를 표현하였다.
외부는 내부와 직접 대응하지 않고,
그 사이에 제3의 공간을 두었다.
이 제3의 공간은
〈유문항아리〉에서 시작된 완충지대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다.
내부와 외부를 곧바로 만나게 하지 않고,
또 하나의 공간을 개입시킴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였다.
관계는 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제3의 공간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

월간추사 제 14호 서보읽기
書譜 — 서법으로 읽는다
47. 詎知 心手會歸 若同源而異派 轉用之術 猶共樹而分條者乎
(이러고서야) 마음먹은 대로 손이 따라 다양한 표현을 실현하는 것은, 서법이 같은 근원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갈래일 뿐이며, 전용(轉用)의 기술 또한 한 나무에서 여러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것과 같다는 점을 어찌 알겠는가.

48. 加以趨吏適時 行書爲妥 題勒方幅 眞乃居先
관리가 되어 시무에 대응할 때에는 행서가 온당하고, 제(題)·늑(勒)·방폭(方幅)에는 진서가 우선한다.
본문의 變은 吏의 오독( *變과 吏의 판독문제: 첨부)

49. 草不兼眞 殆於專謹 眞不通草 殊非翰札
초서가 진서를 겸하지 못하면 초서 일색이 되어 지나치게 단조롭고 풍미가 없으며, 진서가 초서와 통하지 못하면 특히 편지 글씨에 적절하지 못하다

50. 眞以點畫爲形質 使轉爲情性 草以點畫爲情性 使轉爲形質
진서는 점과 획이 형체를 만드는 바탕이 되고, 운필의 리듬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반대로 초서는 점과 획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운필의 리듬이 형체를 만든다.

變과 吏의 판독문제
48. 加以趨吏適時 行書爲妥 題勒方幅 眞乃居先
이 문장에서 주목할 것은 ‘趨吏適時’의 판독이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서보』 석문에는 ‘趨變適時’로 판독한 경우가 많고, 이를 ‘변화에 따라 때에 맞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吏와 變은 초서 자형이 유사하여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서보』 원본의 자형을 직접 확인하면 變보다 吏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진적 석문 역시 ‘趨吏適時’로 판독하고 있다.
變으로 읽으면 ‘변화에 대응할 때’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머물러, 다음 구절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경우와의 연결이 어색하다. 반면 吏로 읽으면 뒤의 ‘行書爲妥’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관리가 되어 시무에 대응할 때에는 행서가 온당하다’는 뜻이다. 이어 題·勒·方幅에는 진서가 우선한다고 하였으니, 글씨가 쓰이는 상황과 용도에 따라 적합한 서체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초서 變 초서 吏

<불이선란도> ‘선락노인’ 해독 문제 — 추가자료
월간추사 11호 〈불이선란도〉 특집에서 작품의 관지에 보이는 ‘선락노인(仙老人)’의 ‘락’자 해독 문제를 다루었다. 이 글자를 露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자형과 『중문대사전』의 확인을 통해 ‘선락노인’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번에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자료를 확인하였다.
추사가 명나라 서예가 문징명(文徵明)의 글씨를 평한 〈文衡山書評〉에 자신의 호를 ‘선락’으로 쓴 사례가 남아 있다.
[도판] 문형산서평에 ‘선락우서’ 불이선란도 ‘선락노인’
文衡山書評
명나라 서예가 문징명의 글씨에 대한 김정희의 생각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 조선 朝鮮 19세기
종이에 먹 紙本墨書 / 24.1 × 89.8cm / 영남대학교 박물관 嶺南大學校 博物館
이 자료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불이선란도〉에만 나타나는 문제의 글자를 자형만으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사가 다른 글에서도 실제로 ‘선락’이라는 호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이선란도〉 관지의 해당 글자를 露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별개의 자료에서 추사 자신이 ‘선락’이라는 동일한 호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지난 호에서 다룬 해독 문제는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근황 / 활동
항백, 「추사 김정희 서론」 학술총서 수록
서예가이자 서법연구가 항백(恒白, 박덕준)의 논문
「추사 김정희 서론 — 필묵의 서법 표현론을 중심으로」
가 추사박물관 학술총서 17에 수록되어 발간되었다.

논문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필자는 서법을 문자·문장·필묵·표현의 네 영역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영역을 각론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을 연구의 기본 틀로 삼고 있다.
한편 서법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세 번의 서법사조 변천을 거쳐온 것으로 파악한다. 필자는 이러한 사조의 변화를 통해 각 시대 서법의 성격과 변화의 흐름을 바라본다.
본 논문은 서법의 네 영역 가운데 필묵과 표현을 대상으로 한다. 먼저 필묵과 표현이 세 번의 서법사조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추사서법에서 필묵과 표현이 갖는 성격과 서법사적 위치를 각각 규명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도달한 논문의 결론이자 추사서법에 대한 필자의 정의는 분명하다.
“추사서법은 필묵에서는 세 번째 서법사조인 청대 신서법사조의 새로운 개념을 흡수하였으며, 표현에서는 위진시기의 고전주의 서법사조를 지향한다.”
필묵과 표현이라는 두 영역을 분리하고 각각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본 것도 결국 추사서법이 서법사의 흐름 속에서 차지하는 이러한 성격과 위치를 밝히기 위해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추사의 서법이 당시 조선에서 성행하던 복고주의적 서법사조와 상반된 방향에 있었다는 점이다. 논문은 이를 통해 추사의 독자성을 단순히 특이한 자형이나 개별적인 필법의 문제로 보는 데서 벗어나, 그가 서법사의 흐름 속에서 취했던 방향과 위치의 문제로 바라본다.
이번 학술총서 수록본에는 학술대회 발표 당시 포함되지 못했던 「추사 서법의 현대적 해석」이 추가되었다. 여기에서는 앞에서 규명한 추사서법의 역사적 성격과 위치를 바탕으로, 오늘날 추사서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논의를 확장한다.
이 논문에서 제기한 추사서법의 원리는 『월간추사』의 연재 「판단의 기록」을 통해 실제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검증해 왔다. 「판단의 기록」은 추사의 개별 작품을 대상으로 그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판단을 하였으며, 그러한 판단 속에서 추사서법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다. 논문이 추사서법의 성격과 서법사적 위치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라면, 「판단의 기록」은 그것이 실제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논문은 필자가 오랫동안 진행해 온 서법 연구 가운데 추사서법에 관한 연구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결과이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앞으로 『월간추사』를 통해 순차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2026. 09 | 월간추사 제 13호 : 영문초록(Abstract)
Abstract
Monthly Chusa Vol. 14 examines the use of space and artistic judgment in Kim Jeong-hui’s Daepeng Gohoe (大烹高會) and begins the fifth of the seven fundamental principles of Hangbak’s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Eliminate Repetition.”
In “A Record of Judgment,” this issue investigates why Kim Jeong-hui deliberately separated strokes that would normally be connected in Daepeng Gohoe. By creating space at the points of connection, Kim adjusted the relationship between density and openness (疏密) and the dynamic force (氣勢) of the work. Rather than relying on variations in the strokes themselves, he created rhythm and resonance (韻) through differences in the distances and spaces between strokes. This reveals a distinctive aspect of Kim’s artistic judgment in his use of space and dynamic force.
“Hangbak’s Principles of Cursive Script” examines repetition as a phenomenon in which the same brush movement is repeated when different graphic components are combined. Through the examples of 草 and 萬, it demonstrates how two repeated movements can be reduced to one, allowing a single stroke to be shared by two components. This principle operates at the final stage of combination, after each component has undergone its own transformation.
A paper presented by Hangbak at the Chusa Museum Academic Conference in October last year, “A Study on the Calligraphic Theory of Chusa Kim Jeong-hui: Focusing on the Theory of Brush-and-Ink and Calligraphic Expression,” has now been published in Chusa Museum Academic Series 17. The ongoing “A Record of Judgment” series has served to examine, work by work, how the principles of Kim Jeong-hui’s calligraphy proposed in the paper operate as concrete acts of judgment in actual works. With the publication of the paper, the research structure connecting the theoretical study and the analyses presented in “A Record of Judgment” is expected to become more clearly visible.

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6. 10 | 제 14호
저자,발행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편집 디자인 : 월간추사 편집부 / Art Director 김 나 희
Email Address : parkhangbak@gmail.com
Web site : www.hangb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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