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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Monthly Chusa

2026. 08 제 12호

월간추사 

2026.  08  제 12호

항백 박덕준  월간추사www.hangb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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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추사어록
결구법이란 없다. 
한 번 정해진 법이라 감히 바꿀 수 없다는 그 생각을 
가장 먼저 깨트려야 한다고 일갈하였다.
한나라 이래 중국 역대 서예를 전면 부정한 대목이 바로 결구이다. 

판단의 기록
- 장소가 판단을 만든다
독도 절벽에 새겨진 ‘한국령’을 하나의 서예 작품으로 해석하였다.
대형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자의 형태가 아니라 장소에 대한 판단임을 제시하였다.

초서원리
「항백초서원리 ④ - 貝의 생략의 세 번째 내용으로   
頁의 초서 형태와 진행 경로를 분석하였다.

이달의 작품  <먼 시절의 장면들- 문 앞에서>
문자가 되기 이전의 장면을 상상하는 작업으로, 문자 이후를 다루는 〈문자도〉와 서로 대응하는 시리즈이다.

서보(書譜)읽기
서보읽기(12) - 세필로 다시 쓴 서보 39~42번 문장
손과정이 말한 서법의 깊은 뜻을 기세 중심의 관점에서 번역하고 해석하였다.

영문초록(Abstract)
근황, 활동  |  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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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所論 結構者 全無着落
所以書家 最重結構 自鍾索 以下 至於 近日 中國書家有 一定 不敢易之. 

서가는 결구를 중시한다. 그래서 한나라 종요 색정 그 아래로 부터 최근 중국의 서가에 까지 이들은 한번 (결구를) 정하면 감히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추사는 감히 말한다. 이 ‘결구’ 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서원교필결후)

결구법이란 없다. 한 번 정해진 법이라 감히 바꿀 수 없다는 그 생각을 가장 먼저 깨트려야 한다고 일갈하였다. 한나라 이래 중국 역대 서예를 전면 부정한 대목이 바로 결구이다. 

많은 이들이 추사를 일러 조선의 서법을 부정하고 중국의 서법만 추종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추사의 관점은 다르다. 서법의 논리에 어긋나면 중국 역대 서예라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결구는 기존 서법사에서 서법의 근본으로 여겨졌던 개념이다. 
이를 통째로 비판한 것은 결구보다 더 근본적인 서법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추사 자신의 서법 역시 결구법이라는 개념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님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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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기록

판단의 기록(6) - 장소가 판단을 만든다
                          < 독도 「한국령」을 다시 보다 >

한국령을 다시보며

최근 독도 절벽에 새겨진 ‘한국령’에 관한 기사에서 나의 평가가 인용되었다.

“이 작품은 건물 벽면이 아니라 거대한 바다 절벽을 캔버스로 삼은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한국령’ 세 글자는 먼바다에서 바라볼 때 마치 눈앞에 직접 쓴 듯한 착시 효과를 줄 정도로 공간 구성이 뛰어나다. 강인한 필획과 웅장한 기세, 그리고 한 획 한 획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정신이 담긴 보기 드문 수작이다. 역사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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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한국령〉  항백  | 한지에 먹, 70 × 212cm 2015

독도를 주제로 제작한 대형 작품. 이 작업을 계기로 원래의 '한국령'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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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이 글씨를 우리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새긴 표지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령’에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영토 표지에 그치지 않는 하나의 훌륭한 서예 작품으로 보아 왔다.

‘한국령’ 세 글자는 절벽이라는 거대한 화면을 압도하면서도 주변의 바다와 바위에 묻히지 않는다. 글자의 크기와 배치는 안정되어 있고, 세 글자 사이의 관계도 긴밀하다. 강한 필획은 거친 암벽과 맞서면서도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바다에서 바라볼 때 세 글자가 하나의 작품으로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보더라도 충분히 예술적 평가가 가능한 작품이다.

나와 ‘한국령’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나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어린 시절 형님을 통해 한진호 서예가와 ‘한국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문적으로 서예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독도의 ‘한국령’은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7년에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독도를 주제로 한 개인 서예전을 열었다. 
그때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로 대형 작품 〈독도-한국령〉을 제작했다. 독도의 형상과 ‘한국령’ 세 글자를 하나의 화면 안에 구성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원래의 ‘한국령’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단지 글자의 형태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왜 이 글씨가 그 장소에서 그처럼 강한 기세를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주목한 것은 글씨의 크기보다 판단의 출발점이었다.
절벽에 새겨진 글자는 작은 원본을 현장에서 확대해 옮긴 것이 아니다. 
한진호 서예가는 처음부터 절벽에 새겨질 크기와 동일한 크기의 원본을 제작했다. 
이미 글씨를 쓰는 단계에서 절벽의 규모와 바다의 거리, 감상자의 시점까지 함께 고려해야 했다는 뜻이다.

장소의 판단

여기서 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서예가의 판단은 종이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결정되는 것은 작품이 놓일 장소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장소는 단순히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소에는 두 가지 판단 요소가 있다. 하나는 장소가 가진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 곧 위치와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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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성격은 어떤 서경(書境)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절벽인지, 현대 건축인지, 한옥인지에 따라 작품이 지향하는 분위기와 형식은 달라진다. 반면 감상자의 시점은 작품이 주변 공간과 어떤 기세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가까이에서 보는 작품과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같은 서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두 판단이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글자의 크기와 비례, 필획의 강도와 공간 구성을 결정할 수 있다.

독도의 ‘한국령’에서는 장소에 대한 두 가지 판단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절벽과 바다라는 특수한 장소의 성격은 그 장소에 어울리는 서경을 요구하였다. 그 서경에는 강인한 정신과 국토 수호의 의지가 담겨야 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바다에서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세 글자는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기세를 가져야 했다. 글자 내부의 공간 처리와 필획의 강도, 세 글자의 관계 역시 모두 이러한 판단 위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암벽면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평탄하게 다듬고, 경사도까지 더 가파르게 조정하여 바다에서 잘 보이도록 만든 흔적은 이러한 판단이 실제 작업 과정에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당시 바다에서 이 글씨를 가장 먼저 마주할 대상 가운데 일본군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다를 향해 글씨를 세운 판단과 거대한 공간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는 표현 의지는 더욱 선명하게 이해된다.

이 작품은 글을 쓴 한진호 서예가, 이를 바위에 새긴 조명호 씨, 그리고 암벽을 다듬고 모든 작업을 추진한 당시 독도경비대원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서로의 역할은 달랐지만, 독도에 '한국령'을 남긴다는 뜻은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여러 사람의 뜻과 노력이 함께 모여 완성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암각 편액 작품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대형 작품을 제작할 때 흔히 두 개의 모니터를 켜 놓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의 모니터에는 지금 눈앞에서 쓰고 있는 획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본 완성된 작품이 있다. 가까이에서는 한 획만 보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전체 작품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대형 작품의 제작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놓일 장소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제작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두 개의 모니터를 켜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는 눈앞의 획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자의 시점에서 작품이 주변 공간과 어떤 기세의 관계를 이루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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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성격은 어떤 서경(書境)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절벽인지, 현대 건축인지, 한옥인지에 따라 작품이 지향하는 분위기와 형식은 달라진다. 반면 감상자의 시점은 작품이 주변 공간과 어떤 기세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가까이에서 보는 작품과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같은 서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두 판단이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글자의 크기와 비례, 필획의 강도와 공간 구성을 결정할 수 있다.

독도의 ‘한국령’에서는 장소에 대한 두 가지 판단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절벽과 바다라는 특수한 장소의 성격은 그 장소에 어울리는 서경을 요구하였다. 그 서경에는 강인한 정신과 국토 수호의 의지가 담겨야 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바다에서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세 글자는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기세를 가져야 했다. 글자 내부의 공간 처리와 필획의 강도, 세 글자의 관계 역시 모두 이러한 판단 위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암벽면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평탄하게 다듬고, 경사도까지 더 가파르게 조정하여 바다에서 잘 보이도록 만든 흔적은 이러한 판단이 실제 작업 과정에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당시 바다에서 이 글씨를 가장 먼저 마주할 대상 가운데 일본군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다를 향해 글씨를 세운 판단과 거대한 공간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는 표현 의지는 더욱 선명하게 이해된다.

이 작품은 글을 쓴 한진호 서예가, 이를 바위에 새긴 조명호 씨, 그리고 암벽을 다듬고 모든 작업을 추진한 당시 독도경비대원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서로의 역할은 달랐지만, 독도에 '한국령'을 남긴다는 뜻은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여러 사람의 뜻과 노력이 함께 모여 완성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암각 편액 작품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대형 작품을 제작할 때 흔히 두 개의 모니터를 켜 놓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의 모니터에는 지금 눈앞에서 쓰고 있는 획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본 완성된 작품이 있다. 가까이에서는 한 획만 보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전체 작품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대형 작품의 제작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놓일 장소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제작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두 개의 모니터를 켜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는 눈앞의 획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자의 시점에서 작품이 주변 공간과 어떤 기세의 관계를 이루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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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액 작업에서도 장소는 단순한 설치 공간이 아니었다. 무용각(無用閣), 소전예가(素磚藝家) 시인서가(詩人書家), 묘재(妙齋), 춘의(春意), 도남(圖南), 소주옥(素酒屋), 등 각각 서로 다른 장소를 전제로 제작되었다. 건축의 성격이 먼저 판단의 기준이 된 경우도 있었고, 사람의 이동 방향과 시점이 작품을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같은 글자를 쓰더라도 장소가 달라지면 작품의 컨셉트와 제작 방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장소를 먼저 본다

<소전예가(素磚藝家)>는 전통적인 편액이 걸릴 자리가 초현대식 건물이라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판단은 그 건축에 어울리는 새로운 편액을 만드는 일이었다. 현대 건축에 어울리는 서예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하나의 숙제였다. 그러나 그 숙제가 현실이 된 것은 소전예가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 작업을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 오래 품어 온 숙제를 현실에서 증명하는 하나의 미션으로 받아들였다. 초현대식 건축에 서예가 어울리지 못한다면, 내가 생각해 온 현대 서법 역시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건물을 읽었다. 건물은 하나의 장소였고, 그 장소의 성격이 서법과 편액의 형태를 결정하였다. 이 작업은 현대 건축과 서예가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 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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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작품이 존재할 장소를 생각한다. 
실제 공간일 수도 있고, 
머릿속에 설정한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런 장소가 정해져야 비로소 작품에 생기가 생긴다. 
내가 오래전부터 '객중서(客中書: 여행중에 쓰는 서법)'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도 같은 이유이다. 글씨는 결국 어떤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가를 먼저 생각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장소가 판단을 만든다. 
장소에는 두 가지 판단 요소가 있다. 
하나는 장소의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자의 시점(거리)이다. 
〈한국령〉은 바다와 절벽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감상자의 시점을 바다에 두었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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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에 원리가 있다

항백 [초서원리 4] - 貝의 생략(3)

3. 貝기호의 발전

가). 문제 제기

지난 호에서는 貝기호의 두 가지 생략방식을 살펴보았다. 그 방식은 좌측 버리기와 우측 버리기이다. 두 방식 모두 한말 이후까지 초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우측 버리기 방식은 점차 잊혀졌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좌측 버리기 방식뿐이다. 심지어 貝가 우측 버리기 방식으로 사용된 기호인데도 오랫동안 大자로 오인되어 해석되기도 하였다. 

- 貝 우측버리기 방식 생략을 大자로 오인한 사례

 

 


積초서에서 貝생략                   賢초서에서 貝생략


한편 貝의 생략은 頁기호에서도 나타난다.
頁(혈)자는 가로획 아래 貝가 결합된 구조로 본다. 頁은 상형의 원리에서는 하나의 문자이다. 그러나 진말 이후 기호 중심의 인식에서는 가로획과 그 아래의 貝기호가 결합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문자 생략은 기호로 보는 시각에서 출발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頁의 생략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즉, 貝의 생략이 다른 기호와 결합하여 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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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頂(정)

 

 


頂 행서                     頂 초서

頂 행서에서 頁은 가로획 아래 貝의 생략으로 이 경우는 ‘좌측 버리기‘ 방식이다. 이 형태는 비교적 익숙하여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項의 초서는 동일한 頁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초서적 압축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이 형태가 무엇을 쓴 것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사례를 하나 더 보자 

- 頃(경)에서 頁 

 

 

행서 頃                   초서 頃
      
행서 頃에서 頁은 가로선과 貝의 좌측 버리기 방식으로 앞의 頂 행서에서와 같다. 頁은 행서에서 이 형태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頃초서에서 이 부분의 정체가 역시 모호하다. 

나). 나의 질문과 가설

초서에 나타나는 이 알 수 없는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나의 질문> 
1. 頁이 포함된 다른 초서에도 이런 모호한 형태가 반복되는가? 
2. 초서에서 이 형태는 잠시 사용된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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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형태를 사용한 이들은 무엇을 연상하며 썼을까?
4. 이 형태를 알수 있는 어떤 단서도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頁이 포함된 여러 초서 자형을 살펴보았다.

-頁이 포함된 다른 초서 자형 

 

 


초서 頗             초서 頓             초서 煩              초서 頭            초서 題


이 자료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頁이 포함된 여러 초서에서 이 형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자형이 아니라 주류적으로 사용된 초서형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형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남아 있는 자료를 보면 이 형태는 위진시기의 왕희지(王羲之)로부터 당의 회소(懷素)와 손과정(孫過庭), 송의 황정견(黃庭堅)을 지나 청대의 장서도(張瑞圖)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형태는 일시적으로 시용된 특이한 형태가 아니라 위진 이전 시기인 한말이후 부터 청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주류 초서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초서에는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호가 다른 문자에서도 나타난다. 天(천)의 초서와 其 초서의 하단부, 그리고 欲에서 欠(흠) 초서와 之에 이르기 까지 비슷한 형태의 기호를 사용해왔다. 이를 쓴 사람들은 이 형태를 기존의 유사한 초서기호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여 특별한 의문 없이 사용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유사한 기호들이 하나의 계열로 묶인다는 일반 원리와도 통할 수 있다. 
그러나 頁의 초서형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 계열에 편입되었는지는 별도로 밝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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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頁초서와 유사한 형태로 사용된 초서기호

 

 


天초서           其초서        欲초서 欠        之초서        --------        頂 초서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이 형태의 발생 과정을 알려 주는 단서는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전 시기의 출토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료를 살펴보기에 앞서, 하나의 가설을 흐름에 따라 정리해 보자.

<가설>
“頁을 나타내는 정체를 알기 어려웠던 형태”는 ‘가로선+貝 우측 버리기’라는 생략방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頁의 진행을 가설을 설정해 본다.

 

 

 

                           頁 초서 변화의 경로(가설, 항백)


頁의 초서 형태(e)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기호가 아니라, 貝 생략의 진행 과정에서 형성된 기호이다. 頁에서 貝 기호가 우측 버리기 방식을 채택하였고(c), 그 형태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생략이 계속 진행되었다면 (c―d―e), 頁의 초서형(e)은 그 과정에서 형성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설이 성립하려면 몇 가지 출토자료를 통해 그 경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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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전시기에 쓴 頁문자에 貝의 우측버리기 형태(c)가 나타나는가? 
지금 초서에는 가설에서 보는 마지막 형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전시기 자료에 頁문자가 ’가로획 아래 貝우측버리기‘의 형태가 확인되면 이는 가설의 (c)에 해당하며, 마지막 형태인 (e)로 가는 중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간 자료에서 이 형태(c)를 확인할 수 있다.

 

 

 

      한간 頃1                    한간 頃2
   
한간은 초서가 완성되기 이전 문자 자료다. 이 한간 자료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간 頃에서 頁은 貝의 생략형이 선명하다. 貝에서 좌우 어느 쪽도 생략하지 않은 형태(경1)와 우측 버리기 형태(경2)가 함께 나타난다. 이를 통해 버리기 이전의 형태에서 우측 버리기로 진행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간 頃1과 한간 頃2는 각각 가설의 (b)와 (c)에 해당한다.
 
② 가설에서 보인 ( c )이후 형태가 장차 (e)형태로 진행된다고 보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필획이 결합하는 부분의 필묵 처리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간 자료 등 초기에는 결합부가 꺾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당 이후로 갈수록 둥글게 이어지는 형태가 늘어난다. 이는 여러 초서의 결합부에서 확인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頁에서도 가설상의 (c)형태는 결합부의 필묵 처리 방식이 변천하여 장차 (e)형태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로캡션 - 頁 초서 변화의 경로(가설, 항백)

 

 

  
    왕탁의 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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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탁(王鐸, 1592~1652)은 명말청초의 서예가이다. 그가 쓴 頂에서는 우측 버리기 방식으로 생략된 貝와 상부 가로획의 결합부가 점차 둥글게 이어지는 과정에 있다. 이는 가설의 (c)에서 (e)로 진행하는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기서 貝 ‘우측버리기’ 방식은 끝이 아니라 과정 중 하나이며, 이후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 사실은 頁의 초서형이 우연히 만들어진 기이한 형태나 다른 부수로 오인할 형상이 아니라, 貝의 생략이 계속 진행되어 형성된 결과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다) 생략이 진행되는 ‘경로 위의 단계’

그래서 “무엇처럼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왔느냐가 핵심이 되고, 그 직전까지 작동한 ‘연결 → 버리기의 연쇄’ 없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상이 된다. 이것은 초서 해석을 형태 해독의 문제에서 과정 추적의 문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처음 의문을 가졌던 頂과 頃 초서 우측부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하나의 경로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항백 초서원리는 정체를 알기 어려웠던 초서기호를 다시 해석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가설은 이제 초서 변화의 경로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도식은 결과를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라 초서가 진행되는 동안 무엇이 어떻게 인식되고 작동했는가를 보여주는 초서 변화의 지도가 된다.

 

 

 

                                  頁 초서 변화 경로 (항백)

- 경로 정리의 해석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우측 형태의 정체를 안다‘는 사실보다 ’그 정체에 도달하는 경로를 동일한 논리로 반복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경로들의 전후 문자는 ‘틀린 것 – 옳은 것’으로 진행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전 문자도 이후 문자도 동시에 성립 가능한 초서의 형태라는 점이다. 즉,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어 사용하더라도 그것은 미완도 아니고 변형도 아니라 동일한 문자 작동 체계 안에 있는 초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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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문자 사용의 관점에서 보면, 초서는 더 이상 ‘정답 형태를 향해 가는 축약 과정’이 아니라, 여러 인식 지점 중 하나를 채택해 실현하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실제 사용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가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공존이 혼란이 아니라 안정된 문자 사용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둘째, 문자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더 결정적이다.
겉으로 전혀 달라 보이는 형태들이 같은 기원, 같은 필법 조건, 같은 생략 경로 위의 서로 다른 위치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형태를 외워서 분류하는 문자 이해’가 아니라 경로를 기준으로 묶는 문자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각각 다른 형태를 하나의 그룹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제 초서는 “왜 이렇게 생겼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인식되었는가”의 문제가 되었고, 그 순간부터 다형(多形)은 혼란이 아니라 구조의 증거가 될수 있다.

頁의 사례는 하나의 문자에 대한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례는 초서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 앞으로도 정체를 알기 어려운 초서 기호들은 이러한 경로 추적의 방법을 통해 다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항백 초서원리가 제안하는 새로운 초서 해석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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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추사  제 12호
이달의 작품

[먼 시절의 장면들 — 문 앞에서]
75x44  2025.  hangbak  한지에 먹 / 탁본
 


'먼 시절'은 고대문자 속에서 상상해 온, 
문자가 되기 이전의 세계를 말한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누는 가장 오래된 경계이다. 

이 작품은 문자 이전의 먼 시절, 
한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던 순간을 상상하며 구성하였다. 

먹과 탁본의 질감을 겹쳐 시간의 흔적을 담고, 
기억 속 풍경을 하나의 조형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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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著述者 假其糟粕 藻鑑者 挹其菁華 
 
책을 짓는다는 것은 고인의 조박함(찌꺼기)을 빌릴뿐 이지만(한계가 있지만), (서예를 하여) 감식에 안목을 얻는다는 것은 그 정수를 얻을 것이다.
- 糟粕 : 거르지 않은 술 조, 지게미 박 
- 藻鑑 : 감식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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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固義理之會歸 信賢達之兼善者矣 存精寓賞 豈徒然與
 
(서예를 하면) 참으로 義와 里를 깨달아 알고 진실로 賢과 達을 겸하여 다 잘 하는 사람이 된다. 정신을 집중하여 감상을 하는데 어찌 한 낫 그렇기만 하겠는가. 
會歸 깨우쳐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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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而東晋士人 互相陶染 至於王謝之族
    郗庾之倫 縱不盡其神奇 咸亦挹其風味 

동진의 선비들에 있어서 王씨와 謝씨의 집안과 郗(치)씨와 庾씨 가문에 이르러서는 서로 교화를 받고 감화되어 (서예의)그 신묘함과 뛰어남을 비록 다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풍류와 아취는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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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去之滋永 斯道逾微 方復 聞疑稱疑 得末行末

그로부터 세월이 더욱 오래되어 그 도가 더 쇠잔(미)해져, 바야흐로 듣고 배운것이 것이 확실하지 않고 전하는 것도 의심스러워, 얻은 것도 미미하고 행하는 것도 하찮은 것이 반복된다.  
聞疑稱疑 : 확실하지 않은 說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남에게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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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This issue examines the principles of calligraphy from two perspectives: judgment of place and judgment of character structure.The article "Record of Judgment" interprets the inscription Korean Territory carved on the cliffs of Dokdo as a work of calligraphic art. Rather than regarding it simply as a territorial marker, the study reexamines it from the perspective of calligraphy and argues that the essential factor in large-scale calligraphic works is not the form of the characters but the judgment of place. Through various examples, it demonstrates that the location of the work, the viewer's position and distance,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surrounding space determine its scale, spatial composition, and brush expression.The article "Hangbaek's Principle of Cursive Script" explains that the abbreviations and transformations found in cursive script are governed by systematic structural principles rather than arbitrary simplification. By analyzing representative patterns of connection, omission, and repetition, the study shows that cursive script is an ordered system formed through the relationships among brushstrokes and can be understood according to consistent structural principles.Although the two articles address different subjects, they share the common view that the method of calligraphy is fundamentally a principle of judgment. One explores the principles for judging place and space, while the other examines the principles for judging character structure. Together, they demonstrate that calligraphic expression is realized through such processes of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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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bak ART GALLERY 활동 (https://www.hangbak.com) 최근 작품 포트폴리오 〈외부의 기세〉 공개(작업기록 포함) 〈필경(筆耕)〉 – 세필 수업 입문 2회 과정 〈추사필법론〉- 3필법론 (2019, 『묵서집 歸』 발표) 〈마천십연〉- 제1호 추사연구작품 (2019, 『묵서집 歸』 발표) 작업실 작은 모임 지난 7월부터 작업실에서 만나는 작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작은 모임이지만, 앞으로도 가끔 이어가려고 합니다. 58회 강암연묵회전 참가 기간 : 2026. 8. 22.(토) ~ 9. 19.(토) (매주 일요일 휴관) 장소 : 강암서예관 (전주시 한옥마을) 오픈 행사 : 2026. 8. 22.(토) 16:30 이번 전시는 전시장소가 전주소리문화전당에서 강암서예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전시 공간의 특성에 따라 작품 크기는 이전보다 작아졌지만, 전시 기간은 한 달 동안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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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Chusa

월간추사  2026. 08|  제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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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발행 : 항백 박 덕 준  hangba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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